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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게 되었나

20170107 152145

‘나는 왜 쓰게 되었나’라고 제목을 정하고 보니 뭔가 거창하다. 만일 이 글의 제목에서 문득 조지 오웰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가 떠오른다면, 맞다. 그게 바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왜 글을 쓰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내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글을 왜 쓰니?’ ‘어쩌다가 쓰게 되었니?’하고.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언제부터 글­ ―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발적인 ― 이란 걸 쓰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그 시작은 내가 초등학생 때인 것 같다(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는 내 기억에 없다). 그 시절에 한동안 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우리 집 컴퓨터 한글 문서에 베껴 쓴 적이 있다. 당시에 그 모습을 본 엄마와 누나는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꽤 범상치 않았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새 창작 욕구를 느꼈나 보다. (역시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혼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90년대 후반)만 해도 인터넷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니 우선 연필로 공책에 써서 컴퓨터 한글 문서에 옮겼다가 다시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했다. 아쉽게도 난 글짓기 신동이 아니었으니, 마음과 달리 멋지게 쓸 순 없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나중에는 그걸 방학 숙제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 흑역사가 초등학교 5학년(6학년인가?) 때 만든 우리 반 문집에 남아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드디어 우리 집에도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중학생이 되어 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 ‘엔티카’라는 옛날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억하나. 싸이월드나 네이버·다음과 비슷한 곳이었는데, 거기에 ‘소설나라’라는 클럽이 있었다. 회원 가입은 자유로웠고, 회원이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나 또한 거기에 잠시 동참했는데, 지금도 내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남아있다.

고등학생이 되어 블로그란 걸 하게 됐다. 바로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이 블로그다. 당시에는 칼럼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칼럼의 주인은 칼럼니스트라고 불렀다. 그래봐야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네이버 블로그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서비스였다. 하지만 나는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이 탐나서 다음에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에 처음으로 마련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주로 블로그에서 글을 썼고,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에도 산문이나 시를 올렸다.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SNS 시대가 개막한 후에는 (글의 길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SNS도 나의 글짓기 공간이 되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글의 원래 주제는 ‘나는 왜 쓰게 되었나’다. 글 쓰는 게 직업도 아니면서, 나는 왜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활자의 형태로 내보이는 걸까. 글 쓰는 게 좋아서다.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강제 없이 자발적인 글쓰기를 10년 넘게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나. 나는 심지어 의무적인 글쓰기조차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교내 행사 때문에 해야 했던 글짓기도 좋아했을 정도. 오죽하면 글짓기, 그림 그리기, 행글라이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교내대회에서도 늘 글짓기만을 선택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면 나는 왜 그토록 글 쓰는 걸 좋아했을까. 난 어릴 때 친구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랬다. 한 명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는 혼자 놀 때가 많았다. 따돌림을 당했던 건 아니지만,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 탓에 좀처럼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여럿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부러워했지만, 마음뿐이었다. 운동도, 게임도 같이 할 수 없었다. 내 딴엔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운동 신경은 지지리도 없었고 게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섞여서 노는 방법도 있을 법한데, 그땐 그 정도의 뻔뻔함이 없었다. 더구나 핸드폰도,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내게 친구란 오직 책뿐이었다. 물론 방과 후에는 늘 가족이 있었지만, 가족이 친구랑 같을 순 없는 일이었다. TV로 만화를 볼 수 있었지만, 방영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만화책에 빠져들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았다. 물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텍스트로만 된 책보다 만화가 있는 책을 먼저 읽었겠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화책보다는 텍스트가 많은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정말로 그걸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직접 써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나보다. 그리고 쓰다 보니 그 매력을 느끼게 된 게 아니었을까.  

처음엔 외로워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게 글쓰기란 이른바 ‘자기 구원 행위’였다. 내가 인터넷이란 걸 모르던 시절에 친구가 없던 나는 책을 나의 벗과 스승으로 삼았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글로 내 상상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읽기’와 ‘쓰기’란 걸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도, 게임도 못하는 내가 자존감을 유지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거다. 

어릴 때부터 각종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는 글짓기 신동들만큼은 아니지만, 글짓기는 어릴 때의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글짓기로 받은 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최우수상(한글날 기념 교내 백일장)이다. 그때의 기억과, 선생님들께 잘 쓴다는 칭찬을 어릴 때부터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인터넷을 만났을 땐 정말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쓴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