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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독점

쌀이 화폐였던 시절에는 재산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래 놔두면 썩으니까. 옛날 천석꾼·만석꾼 부자들이 춘궁기에 빈민들을 구휼했던 건 그들의 선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남아도는 쌀이 썩기 전에 처리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 같다. 쌀도 처리하고 인심도 얻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물론 쌀이 썩든 말든 절대로 나누어주지 않는 욕심 많은 부자도 많았겠지만. 

그런데 오늘날의 화폐는 썩지도 않고 무게도 가벼우니, 옛날 부자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쌓아두어도 아무 걱정이 없다. 게다가 언젠가는 ‘가상화폐’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단다. 그러면 미래의 돈은 전산상에 뜨는 숫자에 불과하니 더 말해 뭐할까. 부의 한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계 없는 부의 시대에 부자들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물론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당하게 벌어서 부자가 된 사람은 존중해야 한다. 나도 그걸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금융 자본주의 시대 이후 돈놀이로 부호(富豪)가 된 이들까지 존중해야만 한다는 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정당하게 번 돈뿐만 아니라 무슨 짓을 하든 돈만 많으면 장땡인 게 지금 세상이지만. 

앞에서, 정당하게 번 돈은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인 부호들의 재산이 전 세계 수십억이 가진 돈과 비슷하다면 과연 공정한 일일까. 

옛날 북미 원주민들에게는 ‘포틀래치’라는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어떠한 연유로든 자신과 가족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재산이 생기면, ‘포틀래치’라는 성대한 축제를 벌여 이를 모두 써버리고 남는 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문화였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지나친 부를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지나친 부’는 ‘빈곤’만큼이나 사회의 안녕을 위협한다.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마치 부자를 혐오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부의 독점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은 분명 자본주의에도 좋은 일은 아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