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에 가는 길이나 도서관에 갈 때, 다른 데라도 버스를 타기보다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집에서 도서관까지(공부하러 가는 건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30분 거리를 갔다 오면 왕복으로 1시간 거리고, 걸어서 갈 때는 왕복 2시간 거리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가 많지만 가끔은 걸어간다. 주변의 행인들과 나무, 도로의 무법자 자동차를 보면서… 걷는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다. 물론 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느림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 걷는다는 것의 아름다움은 느림이다. 걸음의 미학은 느림에 있다. 좋게 말하면 여유로움이고 나쁘게 말하면 느림이지만, 나는 ‘느림’이란 말도 그렇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느리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자동차와 비행기에 이어 며칠 전에는 세계 최고로 빠른 속도라는 고속철도가 우리나라도 개통되었다. 터널을 뚫는 것도 빨리 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루가 지나야 소식을 받을 수 있는 편지가 전화로 단시간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그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메일, 인터넷 대화로까지 발전해나가고 있다. 혹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속도의 시대’라고. 맞다. 그 말이 맞다. 어느새 대한민국 사람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돼버린 ‘빨리, 빨리!’가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지 않나.
과거 우리나라를 찾아왔던 외국인의 책에 의하면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느려터짐 그 자체였다. 물론 그것은 당시 서양인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지만 ‘빨리! 빨리!’가 만연해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 살던 사람이 그 시대에 간다고 하여도 그 외국인의 시각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의 모습은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다. 조선이 망한지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이렇듯 달라졌다.
박정희 시대부터 시작된 개발독재 이래 우리나라가 산업화되면서 ‘빨리, 빨리!’ 하려다 보니 비록 아이엠에프 이전 1만 달러를 이룩하는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게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질 급함. 이처럼 여유로움을 잊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느리다는 것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여유로움’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뒤나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뒤돌아 볼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가끔은… 아무리 바쁠지라도, 가끔은 자가용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보자.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걷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올 것이고 이웃을 돌아볼 여유도 생길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에 걷는 것도 수련이고 명상이라고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나는 빠릿빠릿한 성격이 못돼서 두 가지 일을 하면 한 가지를 놓치고 빨리 뭔가를 해치우지를 못한다. 차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세계에 내가 반감을 갖고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어떤 방송에서 보았는데. 걷는 것은 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헬스클럽에 가서 비싼 돈 들여 운동하지 말고 돈도 들지 않고 건강에도 좋은 산책을 하자.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가졌던 선조들도 생각하면서 산책을 하자. 마음에 여유가 올 것이다. 즐거움이 올 것이고 이웃이 보일 것이고, 평화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