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을 시작하며 |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동양고전 읽기> 프로그램에 강사로 초빙된 교수님 한 분이 소개해주셨던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도 우리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는 모 교수님이었던 것 같다. 우리 과 교수님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이기도 하여 강의를 주의깊게 들었는데 아마도 노자의 ‘도덕경’을 강의하시면서 강의 마지막에 잠깐, 이 책을 소개해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가 쓴 인디언에 관한 책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일반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저자인 클라스트르가 학술적 목적으로 쓴 책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전체 서평을 쓰려고 했지만 인류학 지식에 거의 문외한인 내가 자칫 책의 내용을 왜곡시킬 것 같아. 내가 읽은 책의 내용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몇 개만 골라 소개해본다.
| 1. 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의 지위 |
어떤 인디언 부족에서는 추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다른 누구보다도 소유물이 적고 가장 초라한 장식물만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선물로 줘버리고 없는 것이다. (중략) 새로운 추장의 인기는 그가 얼마나 관대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때때로 반복되는 요구에 화가 난 추장은 ‘전부 바닥났어!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누구든 내 대신 추장을 해봐라!’하고 소리친다.”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학사, 41쪽.
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이란 결코 권력자가 아니었다. 클라스트르의 글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많은 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이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의 봉사자에 불과했다.
물론 추장은 다른 부족민들보다 많은 부인을 거느릴 수 있었다. 또한 부족민 전체를 향하여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그 자리를 자식에게 세습할 수 있는 특권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가 행해야만 하는 의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추장이라고 하여 부족민들에게서 물질적인 혜택(노동 면제)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추장도 다른 부족민들과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추장의 권위가 강한 사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잉카제국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지도자를 지닌 사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라고 클라스트르는 말한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정치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치권력’의 형성에 대항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마치 이 책의 제목처럼.
| 2. 원주민 사회의 경제생활 |
실제로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굶어죽지 않았다. 그 시대의 연대기들은 하나같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 풍부하고 다양한 먹거리 등을 묘사하고 있다. 결국 여러 인디언 부족들의 생계경제는 모든 시간을 식량을 얻는 데 투여하는 고통스러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생계경제는 생산 활동에 주어진 시간이 매우 적다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중략)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자들은 4년마다 2달만 일했던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남자들로서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인 사냥과 어로, 놀이와 음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전쟁을 하는 데 쓰였던 것이다.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학사, 240~1쪽.
선사시대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편견이 있다. (물론 환경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채집이나 사냥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겨우겨우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던 짐승의 상태에 있었다고. 이를 학술용어로는 ‘생계경제’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신석기 시대에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잉여생산물이 생겨났다. 시간이 더 흘러 청동기 시대에 이르면 계급관계가 발생했고 나중에는 국가로 발전했다. 역사학에서는 그렇게 설명한다. 이는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의 생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저자 클라스트르는 그와는 다른 주장을 펼친다. 여전히 석기시대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 사회의 모습을 연구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도 잉여생산물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적은 시간(평균 4시간을)을 일하고도 필요 이상의 생산물을 획득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여가생활에 사용되었다. 오죽하면 책에 나온 어떤 학자가 구석기 시대가 ‘최초의 여가사회’였다는 말을 했을까.
| 3. 글을 마무리하며 |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가 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들었던 교수님에게서 소개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들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되어 있고 책도 여러 권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 교수님이 인디언에 관한 책을 하나 소개해주셨다. 교수님은 책의 내용 중 한 대목을 소개해주셨는데 그 내용이 바로 내가 글에서 소개한 ‘1.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의 지위’ 부분이었다. 그 대목이 너무 인상이 깊어 인터넷에서 주문하여 구입한 뒤 읽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앞에서 얘기했던 내용이지만 난 인류학적 지식이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이다. 물론 학교 수업 중에 인류학 관련 수업인 ‘인류학개론’수업을 한번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게 유일하다. 그것만으로 인류학에 대한 소양을 갖추긴 역부족인 건 물론이다.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였는지 행여나 왜곡하여 전달하지는 않았는지 염려가 된다.
인터넷에 피에르 클라스트르가 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소개를 담은 글이 있다면 그 서평을 참조해주었으면 좋겠다. 정치인류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