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전에 집에 갔다가 오늘 돌아왔다. 원래 목적대로 누나와 조카를 보진 못했지만, 추석 이후로 오랜만에 부모님도 뵙고 첫째 조카도 보고 왔다. 조카의 나이 이제 세 살(27개월)이고 사진으로만 본 둘째 조카의 나이는 이제 10개월이다. 조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도 세상은 지금과 비슷할까. 과연 그때도 인류가 무사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외) 조부모 세대가 어리거나 젊은 시절엔 나라가 없었거나 있어도 아직 제대로 틀이 갖춰지기 전의 상태였다. 부모 세대는 농경시대 막바지와 산업화 시대에 성장기와 청년 시기를 보냈다. 우리 세대는 산업화 시대 막바지에 태어나 (절차적) 민주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에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앞선 세대에 비해서 기간은 짧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잠시 경험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은 앞세대보다 풍요로웠지만, 사회로 나가자마자 비정규직 문제와 저성장으로 인한 실업 문제로 신자유주의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물론 이 바람은 청년 세대만 겪고 있는 건 아니긴 하다.)
이처럼 (외)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가 이처럼 다른 유년·청년기를 보냈는데,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의 삶이 비슷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문제, 핵발전소와 인구 문제 등 아직은 일부에서만 나타나거나 잠재되어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에게 모두 피부에 느껴지는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 같다.
“로마 클럽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성장 사회의 기초를 의문시하지 않는 모든 시나리오는 문명의 붕괴에 이른다. 로마 클럽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3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환경오염에 의해 발생하는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4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식량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7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밖의 시나리오는 위 세 가지 위기의 변형이다.”
– 세르주 라투슈, 『탈성장사회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오래된 생각 中에서…
탈성장사회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 저자 세르주 라투슈 (지은이), 양상모 (옮긴이)
- 출판 오래된생각
- 발매 2014-05-25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지은이가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성장사회비판의 다양한 사상조류들을 탈성장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모델과 사상을 제시하는 책이다.
‘설마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겠어’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난 그 ‘설마’가 현실로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원의 남획으로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터 섬의 주민들도 아마 설마 했을 거다. 거대한 전환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경제적으로는 덜 풍요롭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이스터 섬의 비극은 재현될 거다.
그땐 한 섬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전환에 실패한다면 어쩌면 (전환에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고) 온 인류가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난 ‘신’은 존재한다고 믿지만, 인류가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종족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동·식물 중에 (자연 변화 때문이든 인간의 잘못 때문이든) 많은 것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져갔다. 어쩌면 인류도 언젠가는 다른 종처럼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신의 분노 같은 게 아니라, 선도 없고 악도 없는 무심한 우주의 변화이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인류의 멸종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이스터 섬의 사례처럼 인류가 자멸을 선택한 결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