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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오늘 내 절친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힘든 처지를 이야기하면서 다소 격한 표현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이해했다. 그에게 처음 듣는 말은 아니지만, 그는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부럽다는 말도 했다. 그 말도 나는 이해했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으니까.

그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요절한 친구를 두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십 대 초반에 친구 한 명을 나는 이십 대 후반에 친구 두 명을 각각 잃었다. 우리가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데도 우리의 여신은, 우리를 우리 친구와 갈라놓았다.

내가 먼저 떠나보낸 친구 중 한 명은 그야말로 절친이었다. 그는 나와 중·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우리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가 처음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중 고딩 때에도 그와 대화한 기억이 별로 없었으니, 그 친구와 제대로 한 대화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음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게 인연이라는 걸까. 첫 통화에서 나는 그가 소울 메이트라고 느꼈고, 그와 평생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했다.

당시에 나는 김해에서, 그는 대전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얼굴을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와 종종 전화 통화는 했다. 통화를 자주 하진 않았지만 한 번 통화하면 1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을 넘기는 일도 흔했다. 그와의 대화 소재는 늘 풍성했고 즐거웠다. 나는 우리가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스물아홉,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났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라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렇게 일찍 그와 헤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때가 2016년 9월 8일이니, 벌써 3년 전 일이다. 어느새 그렇게 지났다니. 그의 1주기를 앞두고 인스타그램과 내 예전 블로그에 내가 직접 쓴 시를 포스팅했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라니. 세월이 이토록 무정하고 무상할 수 있을까.

올해 기일에도 나는 그가 있는 00공원 봉안당으로 갈 생각이다. 그의 봉안당에 처음 갔을 때, 나는 그에게 약속했다. 되도록이면 내가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 너를 찾아오겠노라고.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에게 미안해서다.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은 평생은 아니라도 아주 오래 안고 갈 것 같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3년 전, 그의 장례식에 가서야 나는 알았다.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는지를, 그의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대화를 했으면서도 전혀 몰랐다. 고민이 있단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누구나 갖고 있는 그렇고 그런 수준의 고민인 줄로만 알았다.

평생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하고 이른바 ‘소울 메이트’임을 자처하면서도 나는 알지 못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지내긴 했었어도, 그가 대전 집으로 놀러 오라고 여러 차례 얘기할 때 내가 그에게 갔더라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돈이 없다는 핑계로, 그가 살아있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물론 돈이 없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장례식 때 그런 식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면, 그 친구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까짓 차비가 뭐라고, 돈을 빌려서라도 가면 됐을 것을. 우린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언제라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고 우리는 언제든 삶과 죽음으로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론,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