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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산문

그때도 지금처럼

2019.05.05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이 만나 처음으로 ‘무인양품점’이란 곳에 갔다.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고 롯데백화점에 갔다가 보이길래 그냥 가봤다. 유튜브 브이로그에서 많이 보던 곳이라 실제로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어제 갔다가 결국 옷까지 샀다.

처음에는 녹색 반팔 티 하나만 살 생각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위아래로 한 벌을 다 사버렸다. 같이 국밥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전했다.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바로 그 모습. 자주 만나진 않지만 볼 때마다 성장한 것 같아, 그때마다 내게 자극을 주는 그대. 우리가 아직도 서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건강•부동산 시세•자식 걱정 이야기만 하면서 살게 될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중요하니까 얘기할 땐 하더라도, 그 이야기만 하며 살진 않았으면. 나이가 예순이 되고 칠순이 되더라도 계속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좋겠다. 그때도 우리가 어제처럼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70대에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예순다섯에 시니어 모델로 데뷔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나이 많다고 꿈꾸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걷는다는 것(2004)

나는 학교에 가는 길이나 도서관에 갈 때, 다른 데라도 버스를 타기보다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집에서 도서관까지(공부하러 가는 건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30분 거리를 갔다 오면 왕복으로 1시간 거리고, 걸어서 갈 때는 왕복 2시간 거리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가 많지만 가끔은 걸어간다. 주변의 행인들과 나무, 도로의 무법자 자동차를 보면서… 걷는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다. 물론 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느림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 걷는다는 것의 아름다움은 느림이다. 걸음의 미학은 느림에 있다. 좋게 말하면 여유로움이고 나쁘게 말하면 느림이지만, 나는 ‘느림’이란 말도 그렇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느리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자동차와 비행기에 이어 며칠 전에는 세계 최고로 빠른 속도라는 고속철도가 우리나라도 개통되었다. 터널을 뚫는 것도 빨리 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루가 지나야 소식을 받을 수 있는 편지가 전화로 단시간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그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메일, 인터넷 대화로까지 발전해나가고 있다. 혹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속도의 시대’라고. 맞다. 그 말이 맞다. 어느새 대한민국 사람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돼버린 ‘빨리, 빨리!’가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지 않나.

과거 우리나라를 찾아왔던 외국인의 책에 의하면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느려터짐 그 자체였다. 물론 그것은 당시 서양인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지만 ‘빨리! 빨리!’가 만연해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 살던 사람이 그 시대에 간다고 하여도 그 외국인의 시각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의 모습은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다. 조선이 망한지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이렇듯 달라졌다.

박정희 시대부터 시작된 개발독재 이래 우리나라가 산업화되면서 ‘빨리, 빨리!’ 하려다 보니 비록 아이엠에프 이전 1만 달러를 이룩하는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게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질 급함. 이처럼 여유로움을 잊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느리다는 것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여유로움’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뒤나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뒤돌아 볼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가끔은… 아무리 바쁠지라도, 가끔은 자가용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보자.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걷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올 것이고 이웃을 돌아볼 여유도 생길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에 걷는 것도 수련이고 명상이라고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나는 빠릿빠릿한 성격이 못돼서 두 가지 일을 하면 한 가지를 놓치고 빨리 뭔가를 해치우지를 못한다. 차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세계에 내가 반감을 갖고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어떤 방송에서 보았는데. 걷는 것은 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헬스클럽에 가서 비싼 돈 들여 운동하지 말고 돈도 들지 않고 건강에도 좋은 산책을 하자.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가졌던 선조들도 생각하면서 산책을 하자. 마음에 여유가 올 것이다. 즐거움이 올 것이고 이웃이 보일 것이고, 평화가 올 것이다.

폐렴에 걸리다

난 대체로 몸이 건강한 편인데. 군대에서 아픈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나는 올해 내 생애 최악의 설날을 보냈다. 4박 5일의 기간 동안 38~39도에 이르는 상당한 고열과 그로 인한 두통으로 난 춘천에 있는 한 국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3주 동안 있었다. 입원하고 보니 폐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군대 오기 전 동네병원도 잘 안 갈 정도로 건강한 편인 내가 웬 폐렴이람. 게다가 난 폐렴은 어린이나 노약자나 걸리는 병으로 생각했다. 황당했지만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아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난 중환자실로 보내졌다. 난 중환자실이란 사경을 헤매는 정도의 환자들이 가는 곳으로 알았기에 조금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난 그곳으로 보내졌다. 화장실을 갈 때 빼고는 산소 보충기와 혈압측정기를 끼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팔엔 수액을 맞게 되었다. 내가 숨을 못 쉬는 건 아니었지만. 그럴 우려가 보였나 보다. 난 그저 불편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처음엔 열이 너무 안 내려서 내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는데(사경을 헤맨다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입원한지 이틀째 되는 날 열이 내렸다.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있다가 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나서는 산소 보충기도 끼지 않았고 수액도 맞지 않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천천히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빴고 두통은 여전했다. (그런데도 병원 안에서 잘 돌아다녔다-_-:;… 병원 도서실에 수시로 다님…) 다른 사람과 전화할 땐 다 나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난 입원하고 나서도 부모님께 상당기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부모님께서 우연히 알게 되셔서 죄송스러웠다. 부모님께서 면회 온다고 했지만.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싫어 오지 말라고 말씀드렸었다.

입원한 지 3주의 기간이 흘러 난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난 대체로 건강한 편이라 건강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사는데, 나도 이렇게 건강을 잃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때가 겨울이라 강원도의 엄청난 눈과 추위 속에서 근무를 선 탓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폐렴에 걸린 건 나 혼자니 내 잘못이 큰 건 사실이다.) 다행히 그 이후 건강하게 군 생활을 잘 하고 살고 있다.

성년이 된다는 것의 의미

2008.11 어느 날

‘인류학개론’ 수업시간에 한 편의 비디오를 보았다. 그 비디오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 부족의 성인식 모습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 에티오피아 아무르강 유역에 살고 있는 한 부족에서는 우리의 전통 사회가 그러했듯이 성인식이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고 한다. 때문에 성인식 날은 축제 분위기라고 하는데,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힘든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그중 막바지를 장식하는 것이 일렬로 세워놓은 소 네 마리의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것인데, 이것을 통과해야지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전에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당나귀’란 뜻의 ‘위클리’라고 불리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완전히 어른이 되는 것은 결혼을 한 이후라고 하는데… 우리의 전통사회와 닮은 점이 아닐까 싶다.

비디오에서 본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도 성년의 날이 있는데 1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날에는 20세가 된 남녀 청년들이 신사에 모여서 성인식을 치른 뒤 축하행사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나는 올해 5월 19일(성년의 날)이 되기 사흘 전 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과 도지사로부터 성년의 날을 축하한다는 편지를 한 통씩 받았다. 물론 나한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는 당연히 아니고 나와 같은 나이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편지였다. 나와 같은 나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이와 같은 편지를 받았을 것이다. 성년의 날은 말 그대로 성인이 되는 날이라는 말이다. 성인으로 살아가는 성인이 된다는 건 성인으로서 법적ㆍ사회적인 권리를 갖는 동시에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년의 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다.

물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성년의 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에 남자는 상투를 트는 관례를 하고, 여자는 계례를 올리는 등의 의례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달라졌다. 다른 곳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가에서는 주로 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조촐하게(?) 나름대로의 성년의 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성년이 된다는 거… 그건 어떤 의미일까? 성년의 날도 지났고 생일도 지나 만 19세가 되었으니 나도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이만 먹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학교도 다니고 있고, 달라진 게 있다면 합법적으로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실 수 있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영화를 볼 때 나이 제한이 없다는 그런 것이랄까. 변화가 없다. 분명 나이만 먹는다고 성인은 아니다.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걸 다 했으면서도 몸은 성인이되 마음이 성인이 아니라면… 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앞에서 살펴봤듯이 성인식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성인이 되면 아이로서 살아갔던 시절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또 그런 삶에는 책임감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이라는 것은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갖추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는 아직 성인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비록 성년의 날도 지났고 만 20세가 되어 그전까지 갖지 못했던 여러 가지 권리들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전통사회에서 의미했던 그런 성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책임감과 인내심을 갖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제쯤 나는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비록 성년의 날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름은 가졌지만 아직 하모르족에서 말하는 우클리(당나귀)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모르족과 우리나라, 일본 그리고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여러 민족들에서 치러졌던 성인식… 그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새기며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낙엽의 계절

요즘 들어 날씨가 서늘해졌다. 푸르고 높은 하늘, 그리고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 정말 가을인가 보다. 며칠 전 뉴스에서 지리산에 단풍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대표적 명산인 그곳에 직접 가서 아름다운 정경을 보지 못함이 아쉽지만, 어찌하겠는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하지만 가을은 벌써 내가 사는 곳에도 왔으니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리라.

​얼마 전에 모처럼 평일에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신호등의 청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내 옆에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았는데 벌써 잎은 노랗게 물들였고, 낙엽도 제법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아직 싱싱해 보이는 낙엽을 골라 책에 끼워 넣었다. 어린 시절 예뻐 보이는 낙엽을 주워 책에 끼어 보관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집으로 향하면서 언젠가 들어보았던 – 누구의 시인지는 알 수 없다 –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이 구절을 본 것은 시집이 아니었고, 내가 이 구절을 발견한 책에서도 여기까지만 나왔기 때문에, 그 시의 전체 구절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가을을 노래한 시가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지만, 나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눈물은커녕 슬픈 감정을 느낀 적조차 없으니, 나에게는 문학도의 자질은 없나 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낙엽을 보고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무상이랄까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낙엽을 보고 낙엽의 일생이 사람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파릇파릇 녹색의 잎으로 나서,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처럼 낙엽도 노랗게 빨갛게 물들었다가, 사람의 죽음처럼 마지막엔 나무에서 떨어져 낙엽이 되어 그렇게 삶을 마감하는…. 나무와 잎을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야 없겠지만, 낙엽의 일생은 사람과 많이 닮았다.

​낙엽의 일생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든다. 낙엽은 우리에게 아주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은행잎과 단풍잎이 종내는 떨어지는 잎, 즉 낙엽이 되어 일생을 마치는 것처럼 사람 또한 누구나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니 괜한 허욕을 부리지 말고 살라는 것을, 서로 간에 괜한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살지 말라고, 낙엽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을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하는 계절이다.

​200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