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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리뷰/독서 메모

[도서 리뷰] 제주 냄새가 나서 좋은 로맨스 소설, 『폭낭에 걸린 보름』 / 진선경

“할망, 그 사람이 이제 와서 이러는 날 비웃으면 어쩌지?”

할머니가 지운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아가, 소랑에는 부치름이 엇나사랑에는 부끄러움이 없단다.”

어제랑 오늘, 이틀에 걸쳐 이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아마도 어떤 웹소설 사이트에서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무료 회차를 읽고 유료 회차를 구매하기가 성가셔서 그냥 책을 통째로 구매했던 것 같다. 전자책으로 사면 종이책의 반값인 4천 원에 불과해서 부담 없이 지르지 않았나 싶다.

책 제목인 ‘폭낭에 걸린 보름‘에서 ‘폭낭‘은 팽나무를 뜻하는 제주어다. 작품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다. 나는 로맨스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 이렇게 책으로 읽는 것은 물론이고 웹소설과 웹툰은 물론이고 멜로드라마도 즐겨 보는데, 다른 남자들도 그런 걸 보는지 궁금하다. 아마 내가 여지껏 살면서 한 번도 연애란 걸 해보지 못해서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작품 소개를 잠깐 해볼까 한다. 어느 날 유명 배우 ‘국건‘은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잠깐 휴가를 보내려고 스태프보다 먼저 제주도에 온다. 제주도에 오자마자 촬영을 도와줄 제주도 현지 코디네이터인 ‘지운‘을 만나고, 즉흥적으로 드라마 촬영지 사전답사를 핑계로 그녀와 제주도 곳곳을 드라이브한다. 인기스타인 자신을 보고도 무덤덤한 지운에 국건은 호기심이 생긴다. 티격태격한 두 남녀, 하지만 드라마 촬영이 계속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깊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로맨스 소설‘로 여겨지지만, 제주 4.3사건, 제주어 등 제주도만의 정서가 작품 내용과 잘 어우러져서 소설의 매력을 더한다. 제주도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지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제주 냄새가 좋다. 제주도 사람이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하다.

작품에는 이렇다 할 악역이 없다. 여자 주인공을 질투해서 장난을 치는 인물이 한 명 나오긴 하지만, 비중도 크지 않고 그 정도 악역은 귀여운 편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예쁜 이야기다. 옛날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언젠가 꼭 한번 드라마나 영화로도 나왔으면 좋겠다.

폭낭에 걸린 보름
폭낭에 걸린 보름
  • 저자 진선경 (지은이)
  • 출판 신영미디어
  • 발매 2013-11-19

진선경의 로맨스 소설. 생기 가득한 제주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짧은 휴가를 누리기 위해 조용히 제주행 티켓을 끊었건만 앳돼 보이는 현지 코디 아가씨와 말을 섞자마자 스태프보다 먼저 이곳에 온 본 목적이 저만치 멀어졌다.

[도서 리뷰] 투이아비 추장의 메시지, 『빠빠라기』 / 투이아비

오랜만에 옛날에 산 책을 읽고 있다. 책에 찍힌 보안성 도장에 2010년 1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다. 아마 당시에 군인이었던 내가 휴가 나갔다가 부대로 들고 갔던 책인듯하다.

『빠빠라기』는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 작은 섬의 추장 투이아비가 쓴 책이다. 좀 더 정확히는 그가 쓴 연설문을 친구인 선교사 에리히 쇼이어만이 독일어로 옮겨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투이아비는 젊은 시절 선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유럽을 방문한 후, 폴리네시아의 형제들과 원주민들에게 현대 문명의 탐욕과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온 만큼 단순하고 순박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현대 문명의 모순을 파고드는 그의 통찰은 그 어떤 문명사회의 지식인보다 날카롭다. 투이아비는 서양식 교육을 받고 유럽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서구 문명에 주눅들지 않았으며,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향해 빛나는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 『빠빠라기』처럼 근대문명 바깥에서 근대문명을 들여다본 책을 읽는다. 그중에는 원주민 출신이 직접 쓴 책도 있고 백인 저자의 손을 빌린 책도 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무탄트 메시지』, 『구르는 천둥』, 『인디언의 영혼』과 같은 책들이 그렇다. 나는 그런 책이 좋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런 책들을 가끔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근대문명 바깥에서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독서라는 간접 경험으로라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한때 갖고 있었으나 잃어버렸으며,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그것들을 가끔이라도 되새기다 보면 우리의 삶도, 세상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빠빠라기

[도서 리뷰] 청년 농부의 농사일기, 나도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빛나는 농사」 / 곽빛나

곽빛나의 책, 『빛나는 농사』를 읽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보고 알았다. 출간 소식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곽빛나는 내가 아는 분이기도 하다. 사실 한두 번 정도 얼굴을 봤을 뿐이라 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냥 구면이라고 말하는 게 좀 더 맞지 않을까.

예전부터 곽빛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디자인 일을 하며 열성적인 녹색당 활동가이자 청년 농부인, 나이만 비슷할 뿐 정신 연령은 나보다 한참 어른일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빛나는 농사』가 나와서 그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빛나는 농사』는 젊은 농부인 곽빛나의 유기농 농사일기다. 일기인 만큼 농사짓는 일상을 담아낸 글이 대부분이지만, 중간중간 농사를 대하는 그의 시각을 다룬 글도 있어 좋았다.

그의 책을 읽으며 좀 부럽기도 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서 다른 알바를 병행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농부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단단한 자긍심이 부러웠다. 거기에 농사 외에 정치, 디자인, 시민단체 활동에도 참여하며, 바쁘고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게 좋다는 그의 멋짐이 부러웠다.

농사와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건강한 생각을 실은 글을 읽으니, 나도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글 말미에는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을 인용해본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생명을 적게 죽이는 직업이며, 생명을 죽이는 일을 직접 분으로 보고 직접 손으로 행하기 때문에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했는지 과정을 모두 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많은 직업이 내가 못 보고 내가 모르는 경우가 많아 무감각해지고 자기반성이 사라진다. 브로콜리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풀과 벌레가 죽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연이 필요한지 알기에 허투루 먹지 않고,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곽빛나, 「빛나는 농사」, 주남책방, 57쪽.

책

더불어 사는 따스한 마을 이야기,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외 1 / 김효경

이 책을 읽으며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읽은 미국 펜실베니아 로세토 마을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는데,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책 말미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책 뒷부분을 미리 들춰보니 실제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로세토 마을과 비슷한 점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은 제가 그 책에서 관련 구절을 읽고 작성한 메모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든지 좋아질 수도 있다고요. 물론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많은 이들의 뜻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일단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겠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살았다. 마을에서 문단속에 느슨해질 수 있었던 것도 훤히 뚫린 푸른 철조망 너머로 사방에 내 편이 있고 내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 줄 친구들이 가까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신뢰하는 사람들과 살고 있고, 나 또한 신뢰 받고 있다는 느낌은 안정감을 주었다.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반자본의 마음, 모두의 삶을 바꾸다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반자본의 마음, 모두의 삶을 바꾸다
  • 저자 김효경 (지은이)
  • 출판 남해의봄날
  • 발매 2019-04-29

저자가 서울 근교의 변두리 마을에서 겪은 시골살이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의 삶, 그리고 이곳에 흐르는 반자본의 정서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에서 보낸 4년의 경험은 마트와 병원이 없는 삶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으나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오는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저자 김승섭 (지은이)
  • 출판 동아시아
  • 발매 2017-09-13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한다. 차별이나 폭력을 겪고도, 말조차 하지 못할 때, 혹은 애써 괜찮다고 생각할 때 실은 우리 몸이 더 아프다는 것을 연구들은 보여준다. 김승섭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넘어 ‘지역화’로 , 『로컬의 미래』

서점에 주문해두었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신간 『로컬의 미래』(2018년 11월 출간)가 오늘 도착했습니다. 책의 주제와도 어울리게 경남 통영의 작은 지역 출판사 ‘남해의봄날’에서 나왔습니다.

책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한국에 출간된 모든 책을 사서 읽었을 정도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데요. 그 유명한 노암 촘스키의 제자이기도 한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지금은 중앙북스에서 나오지만 본래 녹색평론사에서 처음 출간된『오래된 미래』라는 책으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저 역시 고딩 때 이 책으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요)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가 인도 라다크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인데, 이 경험은 그가 언어학을 넘어 사회운동가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헬레나는 『오래된 미래』이후 출간한 『허울뿐인 세계화』, 『진보의 미래』(공동 저자로 참여), 『행복의 경제학』으로 이어지는 여러 저작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허상과 위험성을 파헤치고 그 대안으로 지역화를 일관되게 외칩니다.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 아니며, 우리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계속해서 대안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로컬의 미래』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듯합니다.

그가 이 책에 실은 다음 구절처럼 우리가 대안을 선택해서 우리 시대에 당면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다른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온전한 경제를 회복하려면 삶의 중심을 로컬로 전환하고 전 세계의 로컬 경제가 튼튼해져야 한다. 지역화는 지구촌이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들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은이), 최요한 (옮긴이)
  • 출판 남해의봄날
  • 발매 2018-11-03

꾸준히 글로벌 경제의 위험을 알려온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신작. 40여 년의 세월 동안 파괴적인 세계화의 여파를 집중 분석해 온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대안은 로컬, 바로 지역화, Localiza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