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대개 공유지(commons)라는 것은 특정인에게 귀속된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에게 개방된 공공재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전승되어온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적절히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아무리 가난한 살림살이일지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최소한의 생존·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가난한 민중은 비록 물질적 생산력이 낮은 삶의 환경 속에서도 이웃과 더불어 나름대로 생을 즐기면서 인간다운 문화를 일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오늘날처럼 배타적인 경쟁논리가 아니라 공유지를 기반으로 상부상조하며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을 ‘도덕경제’라고 부른다.
‘도덕경제’의 원리는 조선의 민중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통용되었다. 구한말 이 나라를 찾았던 서양인들은 나중에 그들이 남긴 기록에서 거의 이구동성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게으르고 불결한 ‘비문명적인’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백성들의 상호부조 관습과 타인에 대한 환대의 풍습에 주목했다.
“이 나라에서는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잔치가 벌어지면 이웃을 초청해서 모든 것을 나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여비를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은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다블뤼 주교,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1860)
발언 2 - 김종철 칼럼집
- 저자 김종철 (지은이)
- 출판 녹색평론사
- 발매 2016-01-11
저자 김종철이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 발표한 글들을 엮었다. 우리사회와 인류사회가 공통으로 빠진 나락의 정체를 말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 변화의 움직임을 소개해온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