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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리뷰/독서 메모

우리에게 필요한 것, 『노란집』 / 박완서

세금을 잘 내면서 국가에 분배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좋고, 자선단체에 내는 기부금 영수증을 면죄부처럼 챙겨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만 내 이웃이나 친척 중 눈치껏 보살피고 안부를 물어야 할 이들을 마음으로 챙겨 가지고 있으면서 자주 오가고 정을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올려다보고만 살았지 내려다보고 살 줄 몰랐다.

또 50년대 가난한 집 담 너머로 음식 냄새가 솔솔 넘어오고,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고, 뉘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서로 사정이 빤한, 당시로서는 보통 수준의 동네에서 뉘 집에서 김치나 부추 부침처럼 이웃에 냄새를 풍길 별식을 할 때면 으레 넉넉히 부쳐서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월급날 고기 근이라도 사게 되면 아이들이 아무리 숯불 피워 구워 먹고 싶어해도 어른들은 냄새나지 않게 냄비에 볶아 먹자고 했다. 나눌 수 없는 건 냄새라도 안 피우려는 이웃간의 배려가 곧 정이 아니었을까. 우린 이런 정으로 가난을 건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삶을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웃과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이런 어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녹색평론》과 이계삼 선생이 말하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도 내가 인용한 글귀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온갖 먹을거리와 물건이 넘치는 세상이 아니라 조금 부족하게 살아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지옥은 그 반대로 겉은 풍요로워도 사람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곳이리라.

노란집
노란집
  • 저자 박완서 (지은이), 이철원 (그림)
  • 출판 열림원
  • 발매 2013-08-30

박완서, 그가 살아온 '노란집'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숨겨진 보석 같은 소설들. 짤막한 소설들 한 편 한 편 속에 생을 다 옮겨다놓은 듯한 이야기들은 마치 작가가 옆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방배추 선생의 거침없는 인생 역정, 『배추가 돌아왔다』 / 방동규

지금도 나는 유생(儒生)형 인간, 즉 먹물 타입의 인간들을 살짝 경멸하지. 예외 없이 바늘뼈에 두부살인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기 십상인데, 내 생각에 그건 몸뚱이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야.

머리가 아닌 육체로 버티며 살아온 방배추 선생의 자신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이 세상의 모든 먹물을 싸잡아 비난한 건 아니다. 방배추 선생의 주변에는 젊은 시절부터 사귄 재야 지식인이 많다. 다만, 공익보다는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지식인들을 비판한 대목이리라.

선생은 젊은 시절엔 강자의 횡포에 맞서 약자를 지킨 당대의 협객이었고, ‘노느메기 운동’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꾼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쉽게 나약해지지 않은 굳센 정신의 사나이기도 했다.

환갑이 지나서는 최고령 헬스 트레이너를 한 적이 있고, 팔순이 훌쩍 넘어서도 보디빌더를 꿈꿀 정도로 몸이 탄탄한 멋진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인생관은 여전히 탄탄한 몸만큼이나 멋지다.

『배추가 돌아왔다』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온몸으로 거침없이 살아온 방배추(방동규) 선생의 인생이 담겨있다. 지금 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감히 확신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면 방배추 선생의 삶에 반할 거라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배추가 돌아왔다 1
배추가 돌아왔다 1
  • 저자 조우석, 방동규 (지은이)
  • 출판 다산책방
  • 발매 2006-12-11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온 사람, 상식보다는 자기 가슴이 가리키는 대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 '조선의 3대 구라', '살인 빼고 안 해본 일 없고 남극 빼고 안 가본 곳 없는 맨몸인생'이란 수식어의 주인공 방동규 씨. 본명보다는 별명 '배추'로 더 유명한 72세의 괴짜 할아버지의 유쾌한 인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둑을 스승으로 삼은 주나이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주나이드는 늙어서 제자들로부터 “당신의 스승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자기가 만났던 한 훌륭한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여행 중에 사막에서 길을 잃은 주나이드는 어떤 도둑과 며칠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매일 밤 도둑은 주나이드에게 말하곤 했다.

“자, 난 물건을 훔치러 갑니다. 당신은 여기서 쉬면서 날 위해 기도해 주시오.”

도둑이 돌아오면 주나이드는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라도 훔쳤소?”

도둑은 말했다.

“오늘 밤은 실패했소. 하지만 신의 뜻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난 또 다시 시도할 것이오.”

도둑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희망에 차 있었다. 여러 해를 명상과 사색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가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을 때면 주나이드는 늘 깊은 절망에 빠져 이 모든 어리석은 짓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곤 했었다. 그럴 때면 그 도둑이 하던 말을 떠올리고서 주나이드는 수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열림원 (72쪽)

로마의 대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열림원 (118쪽)


류시화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연설문을 모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책 덕분이었다. 류시화 시인이 그 책의 번역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포함한 제3세계 원주민의 정신세계를 다룬 책과 명상 서적을 다수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류시화 시인은 본래 시인이지만 시보다는 명상 서적의 번역과 집필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자로 참여한 『무탄트 메시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인생 수업』과 직접 쓴 『지구별 여행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류시화 씨가 쓴 시집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하나밖에 안 읽어서 내가 그 점에 관해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가 직접 집필하거나 번역자로 참여한 책을 봤을 때 그는 확실히 신비주의 성향이 다분하다.

그래도 내게는 상관없다. 인생이란 본래 신비와 경이로 가득 찬 세계인 것을. 그런 감성을 잃어버린 시대가 문제일 뿐, ‘신비주의’는 죄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실을 외면하진 않겠으나, 그렇다고 인생과 세상에 관한 신비와 외경심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저자 류시화 (지은이)
  • 출판 열림원
  • 발매 2015-09-17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개정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인도로 떠난 류시화 시인이 경험한 엉뚱하고, 기발하고, 웃음 넘치는 일화들. 시인의 눈과 마음으로 다가간 세상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를 일깨운다.

[독서노트] 담대하게 내 길을 가리라 『흐르는 강물처럼』 / 파울로 코엘료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의 ‘오늘을 읽는 책’ 코너에서는 정선태 교수가 나와 좋은 책을 소개하는데, ‘이완배의 경제의 속살’과 함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꼭지다. 정선태 교수가 오늘 추천한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한때 누나가 좋아했던 소설가다. 어렸을 때 누나의 서가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누나가 가진 파울로 코엘료의 다른 책도 읽었던 것 같은데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그가 쓴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직접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정선태 교수가 방송에서 소개한 책의 글귀를 ‘독서노트’라는 이름으로 소개해본다.

때로 우리는 살아온 방식에 얽매여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다. 기회가 와도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너 나 없이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믿으며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을 또 대학에 보낸다. 그런 삶을 되풀이하며 아무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난 좀 다르게 살 수 없을까?

사회학과에 다니는 딸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나의 단골 이발사가 떠오른다. 그의 딸은 졸업장을 따고 여기저기 취업문을 두드린 끝에 시멘트 공장에서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이발사는 여전히 입버릇처럼 뿌듯하게 말한다. “우리 딸은 대학을 나왔어요.”

내 친구들과 그 자녀들도 대부분 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었을까? 그 반대다. 그들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풀린다 믿었던 시절, 뭐라도 되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솜씨 좋은 정원사, 제빵사, 골동품상, 조각가, 작가들이 사라져갔다.

이제는 모든 것을 되돌아봐야 할 시기가 아닐까. 의사, 엔지니어, 학자,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파울로 코엘료 (박경희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 문학동네

마치 한국 얘기를 듣는듯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브라질 출신이다. 유럽에는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을 텐데. 브라질도 한국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은가?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원까지 수료했지만, 적어도 이 문제엔 당당하다. 남들이 다 가서가 아니라 정말로 학자가 되고 싶어서 갔으니까. 지금은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 꿈은 중학생 때부터 역사학자였다. 단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선태 교수는 위 글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남들이 대학 간다면 다 대학 가고 남들이 다 좋은 길이라면 다 몰려간다. 이런 식으로 균질화, 표준화 되어가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고유한 무늬를 지워버리는 삶에 대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불안해하기 일쑤다. 담대하고 자기 삶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다.

정선태 교수의 말

암만해도 한국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외국 작가가 쓴 책이다. 어느 나라든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기란 어려운가 보다. ‘담대한 사람만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라. 그래서 인생이란 참으로 쉽지 않은 여정인가 싶다. 그럼 나는 담대한 사람이 될 테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아래 구절은 정선태 교수가 그다음으로 소개한 대목이다.

아랍에 이런 경구가 있다. ‘바보에게 천 가지 지혜를 가르쳐준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작 네 것뿐이리니.’ 삶의 정원을 일궈나가다 보면 우리는 문득 어디선가 우리를 엿보는 이웃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제 할 일은 제쳐둔 채, 우리에게 언제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언제 생각의 비료를 줘야 하는지, 언제 성취의 물을 부어야 하는지 충고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우리 삶의 정원은 이웃의 뜻대로 되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비지땀을 쏟고 축복의 거름을 주어 일군 우리의 땅을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땅 한 뼘 한 뼘에 정원사의 인내 어린 손길만이 풀어갈 수 있는 비밀이 서려 있음을 까맣게 잊고, 해와 비와 계절의 변화를 살피는 대신, 울타리 너머 우리를 곁눈질하는 이웃의 충고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의 정원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그 바보는, 제 뜰의 꽃과 나무는 안중에도 없다.

파울로 코엘료 (박경희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 문학동네

내가 안전해 보이는 길을 가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일 뿐 100%가 아니다. 인생이란 모르는 법이다.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다리를 건너더라도, 하늘이 허락지 않는다면 부실공사한 것처럼 무너지리라.

그러니 담대하게 내 길을 가리라. 세속의 기준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하늘의 영역이다. 나는 그저 내 리듬에 맞춰 살아가면 그만이다.

내가 내 리듬으로 살지 못해도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 있을까. 그건 이미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인 것을. 실패해도 좋다. 처절하게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리라.

실패한 인생도 성공한 인생만큼이나 의미가 있으니.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 성공한 인생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내 인생의 성패는 내가 판단한다.

세속의 기준에서 실패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실패가 아니다. 만약에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세상에서 어떻게 판단하든 내 인생은 실패다.

그러니 담대하게 내 길을 가리라.

[독서노트] 산업화의 본질 『오직 하나뿐』 / 웬델 베리

2018.01.09 읽음

실직 상태는 처음부터 산업화의 목표였으며, 러다이트들은 즉각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산업 기술의 목표는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일자리를 값싸게 만들어 부가 가난하나 곳에서부터 부유한 곳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데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노동력을 무시하거나, 그것을 노동 절약이니, 효율성이니, 발전이니, 편의성이니, 속도니, 안락함이니, 심지어 창의성이라고까지 해가며 온갖 공식적이고 유사종교적인 기도문 같은 말로 위장함으로써 이런 대체물 속에 늘 도사리고 있는 폭력을 다루어 왔다.”

웬델 베리(배미영 옮김), 『오직 하나뿐』, 이후, 137쪽.


웬델 베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보통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롭지 않으리라고 본다. ‘인공지능’이니 뭐니 아무리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산업화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다.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새로운 산업혁명은 늘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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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웬델 베리 선생의 책을 읽고 위와 같은 생각을 남겼었다. 한국에서는 천규석 선생이 이 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웬델 베리는 농부 철학자이자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천규석 선생은 여러 저서를 남긴 농민운동가이며 농부이다.

농부 지식인의 사례는 그 외에도 더 있다. 웬델 베리와 마찬가지로 교수를 지낸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 (보리출판사·변산공동체 대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으로 알려진 농부 전우익 선생, 글 쓰는 농부 전희식 선생, 생태 농업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마 더 있을 테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한국 지식인이라면 아마도 유시민과 진중권이겠지만, 시민들이 그들보다는 흙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도시 지식인보다는, 직접 흙을 만지며 생명을 기르는 사람들이 더 진실한 목소리를 내리라 믿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