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의 ‘오늘을 읽는 책’ 코너에서는 정선태 교수가 나와 좋은 책을 소개하는데, ‘이완배의 경제의 속살’과 함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꼭지다. 정선태 교수가 오늘 추천한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한때 누나가 좋아했던 소설가다. 어렸을 때 누나의 서가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누나가 가진 파울로 코엘료의 다른 책도 읽었던 것 같은데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그가 쓴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직접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정선태 교수가 방송에서 소개한 책의 글귀를 ‘독서노트’라는 이름으로 소개해본다.
때로 우리는 살아온 방식에 얽매여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다. 기회가 와도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너 나 없이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믿으며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을 또 대학에 보낸다. 그런 삶을 되풀이하며 아무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난 좀 다르게 살 수 없을까?
사회학과에 다니는 딸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나의 단골 이발사가 떠오른다. 그의 딸은 졸업장을 따고 여기저기 취업문을 두드린 끝에 시멘트 공장에서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이발사는 여전히 입버릇처럼 뿌듯하게 말한다. “우리 딸은 대학을 나왔어요.”
내 친구들과 그 자녀들도 대부분 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었을까? 그 반대다. 그들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풀린다 믿었던 시절, 뭐라도 되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솜씨 좋은 정원사, 제빵사, 골동품상, 조각가, 작가들이 사라져갔다.
이제는 모든 것을 되돌아봐야 할 시기가 아닐까. 의사, 엔지니어, 학자,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파울로 코엘료 (박경희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 문학동네
마치 한국 얘기를 듣는듯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브라질 출신이다. 유럽에는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을 텐데. 브라질도 한국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은가?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원까지 수료했지만, 적어도 이 문제엔 당당하다. 남들이 다 가서가 아니라 정말로 학자가 되고 싶어서 갔으니까. 지금은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 꿈은 중학생 때부터 역사학자였다. 단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선태 교수는 위 글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남들이 대학 간다면 다 대학 가고 남들이 다 좋은 길이라면 다 몰려간다. 이런 식으로 균질화, 표준화 되어가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고유한 무늬를 지워버리는 삶에 대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불안해하기 일쑤다. 담대하고 자기 삶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다.
정선태 교수의 말
암만해도 한국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외국 작가가 쓴 책이다. 어느 나라든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기란 어려운가 보다. ‘담대한 사람만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라. 그래서 인생이란 참으로 쉽지 않은 여정인가 싶다. 그럼 나는 담대한 사람이 될 테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아래 구절은 정선태 교수가 그다음으로 소개한 대목이다.
아랍에 이런 경구가 있다. ‘바보에게 천 가지 지혜를 가르쳐준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작 네 것뿐이리니.’ 삶의 정원을 일궈나가다 보면 우리는 문득 어디선가 우리를 엿보는 이웃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제 할 일은 제쳐둔 채, 우리에게 언제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언제 생각의 비료를 줘야 하는지, 언제 성취의 물을 부어야 하는지 충고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우리 삶의 정원은 이웃의 뜻대로 되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비지땀을 쏟고 축복의 거름을 주어 일군 우리의 땅을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땅 한 뼘 한 뼘에 정원사의 인내 어린 손길만이 풀어갈 수 있는 비밀이 서려 있음을 까맣게 잊고, 해와 비와 계절의 변화를 살피는 대신, 울타리 너머 우리를 곁눈질하는 이웃의 충고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의 정원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그 바보는, 제 뜰의 꽃과 나무는 안중에도 없다.
파울로 코엘료 (박경희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 문학동네
내가 안전해 보이는 길을 가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일 뿐 100%가 아니다. 인생이란 모르는 법이다.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다리를 건너더라도, 하늘이 허락지 않는다면 부실공사한 것처럼 무너지리라.
그러니 담대하게 내 길을 가리라. 세속의 기준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하늘의 영역이다. 나는 그저 내 리듬에 맞춰 살아가면 그만이다.
내가 내 리듬으로 살지 못해도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 있을까. 그건 이미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인 것을. 실패해도 좋다. 처절하게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리라.
실패한 인생도 성공한 인생만큼이나 의미가 있으니.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 성공한 인생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내 인생의 성패는 내가 판단한다.
세속의 기준에서 실패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실패가 아니다. 만약에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세상에서 어떻게 판단하든 내 인생은 실패다.
그러니 담대하게 내 길을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