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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김규항 선생의 말에 따르면 나도 이미 절반쯤은 노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가 아닌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돈과 권력을 가졌든 못 가졌든 우리는 이미 대부분 노예 상태에 있다. 너무 없는 사람은 너무 없어서 노예가 되고, 너무 많은 사람은 너무 많아서 노예가 된다.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은 괜찮나? 중간에 있는 사람도 적당히 매여있는 노예가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중간이 제일 좋다고 했나? 어차피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완벽한 노예가 되는 것보다야 중간 수준의 자유를 누리는 노예가 그나마 나을 테니까.

그렇지만 난 (중간도 못 가는 주제에) 겨우 중간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100퍼센트 자유민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7할, 8할은 아니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6할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고 말 테다.

수많은 노예제

‘해방은 오로지 자기해방’이라는 말은 인간 해방이 단지 법적 차원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예는 어떻게 해방되는가. 노예제가 철폐되어 법적 자유인이지만 친절한 주인을 그리워한다면 아직 노예일 뿐이다. 노예제 하에서도, 자유인이 되려 투쟁하는 노예는 이미 해방된 인간이다. 노예제 역시 법적 차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과 자유의 허울을 쓴 수많은 유형의 노예제가 존재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늘 자문하면서도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체념할 수밖에 없게 한다면, 바로 그게 노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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