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8
편의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게 1982년이라지만, 내가 초딩이던 90년대 중후반 때만 해도 편의점을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시골도 아니고 중소도시에 살았는데도 그랬다. 내가 기억하기로 대형 슈퍼마켓은 있었지만, 작은 가게들은 모두 개인이 하는 구멍가게였다. 분명 그랬는데 어느샌가 편의점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혼자 사는 경우엔 대형 마트보다는 주로 편의점을 이용해서 생필품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아예 편의점이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나오거나 (김애란의 단편소설 ‘ 나는 편의점에 간다☜’,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편의점을 통해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편의점 사회학》☜(책 소개만 읽어봤지만)이라는 책도 나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반년간의 편의점 알바 경험이 있으니 할 말은 다 한 거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편의점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의 책 『문화의 발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문화의 발견 - KTX에서 찜질방까지
- 저자 김찬호 (지은이)
- 출판 문학과지성사
- 발매 2007-05-18
지은이는 우리 주변을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의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른 개의 공간을 택해 대한민국의 풍경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를 짚어나간다.
편의점은 도시 문화의 산물이다. 도시인, 특히 젊은이들의 인간관계 감각과 잘 맞아떨어진다. 구멍가게의 경우 주인이 늘 지키고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손님들을 예외 없이 ‘맞이’한다. 따라서 무엇을 살 것인지 확실하게 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편의점의 경우 점원은 출입할 때 간단한 인사만 건넬 뿐 손님이 말을 걸기 전에는 입을 열지도 않을뿐더러 시선도 건네지 않는다. 그 ‘무관심’의 배려가 손님의 기분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부담 없이 들어가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관계의 번거로움을 꺼려하는 도회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상업공간이다. (대형 할인 마트가 백화점보다 매력적인 것 가운데 하나도 점원이 ‘귀찮게’ 굴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그러므로 ‘익명’의 고객들이 대거 드나드는 편의점에 단골이 생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찬호, 《문화의 발견》, 문학과 지성사, 112쪽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일하던 편의점은 상당히 구멍가게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일단 손님이 오면 무조건 반갑게 인사하고 (내가 특별히 열심히 인사를 한 알바인지도 모르겠지만) 손님들이 대부분 단골이라서 (편의점에서 일할 때 상당히 신기한 점이었다) 나에게 음료수 같은 것도 챙겨주기도 했고, 가끔 같이 수다를 떨기도 했다.(심지어 내가 말을 걸기도…) 거기다가 단골은 외상까지 가능했으니 두 말 할 나위가 있을까.
아마 내가 일하던 곳은 오피스텔,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다는 특수 조건 때문이리라. 보통의 경우는 위 글을 쓴 김찬호 교수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편의점은 어떻게 이토록 급속히 우리 생활에 가깝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 김찬호 교수는 그 원인 중 하나가 편의점의 24시간 영업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교수가 말한 이유가 더 많았겠지만, 뒤 내용은 내가 안 읽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1인 가구의 증가가 아닐까.
한때의 전성기를 뒤로 한 채 편의점이 요즘 저성장 시기라고 하는데,(과포화 상태라고 한다) 2018년을 기점으로 인구 절벽이 오고(이후로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예측하더군요.) 고령화가 되는 한편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편의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거라는 시각도 있다. ☜
글쎄…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고 본다. 지금 같은 일자리 불안이 계속되는 한, 더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느껴지는 편의점 영업에 뛰어들게 된다. 지금도 일부 목 좋은 곳을 제외하고는 편의점 경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실로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편의점 점주는 손해를 보고도 장사를 마음대로 접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편의점 본사는 계속 매출이 크게 오른다. 과연 이런 상황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24시간 동안 운영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엄청난 전기 사용량, 날마다 버려야 하는 폐기 음식과 손님들이 버리고 간 엄청난 쓰레기들. 편의점에서 반년간 야간 알바를 하면서 느꼈지만 사회·생태적으로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야간에는 아예 영업을 안 하자니 한국의 일상적 야근 문화가 걸린다. 하지만 성장은 언젠가는 멈춘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는 지금과 같은 반생태적인 성장은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여건 속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만약 그런 시대가 열린다면, 편의점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운영방식의 편의점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