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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나의 행복론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완전 무결한 행복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 행운이 인생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는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는 없다.

물론 세상에 100퍼센트는 거의 없으니 간혹 그런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마도 인류 전체를 통틀어 극소수에 속할 행운아일 테다. 그와 같은 인생을 살 가능성은 어마어마한 당첨금으로 유명한 미국 슈퍼볼 복권 당첨보다도 훨씬 확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크고 작은 고민을 갖고 살아간다. ‘아무 걱정 없는 어릴 때가 좋았지’ 하고 우리는 때때로 추억을 회상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릴 때에도 1년 365일 아무 걱정 없이 늘 즐거운 시간만 있진 않았다. (집에 별다른 우환이 없는 경우라도) 우린 그 시절에도 우리만의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성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보잘것없을 수는 있으나, 그때 당시 우리에겐 분명 아주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였으리라.

살아가며 저마다 고민과 걱정, 불안을 안고 사는 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인생의 중대사가 달린 커다란 문제보다는 잡스럽고 번다한 일이 많을 테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쓰라린 일이 있기도 하리라.

인생의 참맛이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서 어떻게든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데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신나거나 즐거운 일들이 가끔 일어나면 그걸 즐기면 된다. 그게 바로 행복이고 행복한 삶 아닐까. 행복의 열쇠는, 번다한 일상의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일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인류 생존의 위기와 초록 대안(2008년)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지구온난화 문제는 여전하고 몇 년 전부터 부쩍 증가하고 있는 쓰나미와 가뭄 등 환경재난 등이 그 증거다. 온대 기후인 우리나라의 기후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고 하며 고비사막과 사하라 사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가 진전된다면 아마 세계지리 교과서는 크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달라질 것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간빙기, 후빙기 그리고 한때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은 적이 있었다고 하니 기후변화는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금세기의 기후변화는 ‘자연’이 아닌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구가 수백만 년 동안이나 간직하고 있던 ‘화석연료’인 석탄, 석유 등을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마구 끌어다 쓴 결과, 인류는 전례 없는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생태계 파괴 문제도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생물의 종 다양성 감소는 해마다 적지 않은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우리네 강산에서도 이제 찾아보기 힘든 생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늑대의 경우 토종늑대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열목어 등의 물고기도 몇 군데 외에는 별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토록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일반 시민들이 이를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되 관념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오늘날 어느 정도 이상의 경제수준을 갖추고 있는 나라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자연과 떨어져 있는 도시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라도 있는 주택이라면 몰라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인구가 대부분인 요즘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름으로 친(親) 기업·친(親) 시장 정책 아래 경제단체가 요구하는 대로 환경규제를 풀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국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짐작되는 한반도 대운하 추진 등을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다.

또, 한국의 대선 당시 최대의 이슈는 ‘경제 살리기’였고 총선 때는 사기극으로 끝난 ‘뉴타운’공약이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앞날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작년 호주 총선 때 지구 온난화 문제가 중요한 선거 쟁점으로 부상했듯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국제사회에서 날로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부터 환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한살림’ 운동 등 대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여도 이 문제가 피부에 닿을 정도의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게 되면 그것을 외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보다 빨리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위기를 대처해나가야 한다. 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얘기하라면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간단하게 대안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대안은 초록이다. 단순히 환경운동가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초록의 가치’를 전파해나가야 한다.

‘초록의 가치’를 전파해나가는 것은 여러 가지 방안이 있으리라. 퍼포먼스도 좋고 서명운동도 좋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방법은 가장 어렵긴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 즉 공교육에 ‘초록’이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필수 교양과목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교육면에서 초록의 가치를 전파하는 한편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 사업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는 고유가 시대이다. 화석연료의 위기이다. 구태여 학술기관들의 연구결과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하여도 상식적인 수준으로 보아도 오래가지 않아 석유·석탄 등이 고갈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자원을 통한 에너지 외교는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잠재적인 위험이 큰 ‘원자력 에너지’는 미래 세대의 에너지가 될 수 없다. 다소 예산이 많이 든다 하여도 정부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개발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를 만든다 해도 국가가 주도하기보다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해주는 형태로 가야 한다. 또, 이전과 같이 중앙에서 모든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앙 집중식이 아니라 지역 자체적으로 자급이 가능한 에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잠깐, 그에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 먼저 도시계획을 통해서 기존의 화석연료를 적게 사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오염의 주원인 중 하나는 자동차다. 만일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할 수 있는 (직장부터, 장보기에 이르기까지) 도시구조를 기본으로 도시계획을 세운다면 자동차를 사용할 필요는 적어질 것이고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의 위험성은 감소할 것이다.

이상으로 환경문제와 그에 따른 대처방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환경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는, 우리의 생존과 직접 관련된 문제다.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었으니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해결될 수도 있다. 인간만의 편리를 추구해왔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너무 늦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급하지도 않게, 차분하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 방향을 모색해 나가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2019.05.16

오늘은 5월 16일.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쉽게 말해 군사 반란. 우린 ‘5월 16일’이란 날짜를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다시는 그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다.

‘박정희’, 하면 사람들은 그의 최대 정적인 YS • DJ와 재야의 대통령 장준하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아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박정희에게 법살(法殺)된 언론인 조용수. 그는 1961년 2월, 혁신계 언론사인 민족일보를 창간한다. 조용수는 투철한 반공주의자였으나 민족일보를 통해 평화통일을 이야기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 이념보다는 민족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조용수의 ‘평화통일 노선’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결국 1961년 12월, 조용수는 북한에 이적행위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용수보다 앞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죽산 조봉암이 이승만에게 법살된 것이 그로부터 불과 2년 전이었다. 서글픈 역사의 반복이었다.

조봉암은 2011년에, 조용수는 2008년에 대법원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형 당시 조용수의 나이는 32살이었다. 지금 내 나이와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 자꾸만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천재성’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그대에게

생각을 좀 달리해보면 알 거야. ‘천재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천재는 재능이라도 있지만 천재가 아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른바 ‘특출난 재능’이란 게 없는데도 직장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고 세금도 내면서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잖아?

‘위대한 평범함’이라는 게 그런 거지. 천재와 비교해서 자괴감 느낄 필요없어. 오히려 자랑스러워야 해. 대한민국을 지키고 먹여살리는 게 진짜 누구인지를 들여다보면, 그게 바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