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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트럼프의 우주군 창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우주전쟁’(Star Wars)의 막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우주사령부 창설을 명령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했다고 18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이 전했다. 미 인공위성 등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결정으로, 우주사령부 설립 배경에는 ‘우주군’을 만들어 우주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우주사령부’를 창설하고 한국 돈으로 약 9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우주산업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우주산업의 산물인 인공위성 덕분이니까. 나는 인터넷도 그 덕분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2015년 《테크홀릭》 에 ‘인공위성 인터넷은 성공할 것인가’라는 기사를 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우주산업으로 누리는 혜택이 분명 더 있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이 우주 군사작전에 대비하려고 우주사령부를 창설한다니. 자그마치 9000억 원이라니 이게 대체 뭔 짓인지.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다들 왜 이러는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도 부정적일 이유가 없는데. SF 영화도 아니고 다들 왜 이러나. 하긴 인공위성을 포함해서 인류의 과학기술은 대부분 군용[軍用]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우주군 창설도 나중에 어떻게든 민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까. (군대[전쟁]와 과학은 실제로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어니스트 볼크먼이 쓴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를 읽어보면 좋겠다. 오래된 책(2003년)이라 지금은 절판됐지만 공공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다.)

미국의 국방비(687조)를 생각해보면 9000억 원이라는 액수가 그렇게 커 보이진 않으나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왜 그처럼 큰돈을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쓰지 않고 우주에 퍼붓는지 모르겠다. 물론 ‘우주 안보’라는 명목이겠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우주군 창설에 힘쓰는 나라가 중·러와 미국이 다가 아니다. 조금 찾아보니, 美 공군 우주사령부가 주최하는 ‘슈리버 훈련’에 미국을 포함해서 일본·영국·호주· 뉴질랜드·프랑스·독일 총 7개국 정부 관계자가 참가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른바 ‘우주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한국도 여기에 동참하게 될 테다. 내가 보기엔 한심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이 이러니 어찌할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트럼프, 우주군 창설 첫발.. 2020년 ‘스타워스’ 서막 오르나

[서울신문]우주사령부 부활 명령 행정각서에 서명 병력 규모 1600명…5년간 8억달러 투입 중·러 위협 확대되자 우주패권 장악 의도 美 언론 “의회 승인·예산 등 쉽지 않을 것”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우주전쟁’(Star Wars)의 막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우주사령부 창설을 명령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했다고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news.v.daum.net

경제성장률의 환상

며칠 전 인터넷을 뒤지던 중 어떤 기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눈으로 대충 읽었는데 그 기사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와있었다.(기사였나? 칼럼이었나?) 아! 그 얘기를 하기 전에 그 기사 본문에 있던 글 중 다른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한강의 기적’과 ‘라인강의 기적’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둘 다 폐허가 된 국가 경제를 재건한 유명한 사례이다.

‘라인강의 기적’은 아시다시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패전해 만신창이가 된 도이칠란트(독일)를 재건해 경제대국으로 일으킨 독일의 고도성장기를 의미한다. 60~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기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알아본 바로는 독일 사람들이 ‘라인강의 기적’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떠올리는 것만큼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표현 자체도 한국식 표현이란다.

기사를 쓴 글쓴이의, 남편의 말에 의하면 ‘라인강의 기적’은 우리의 ‘한강의 기적’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한다. 독일의 30년 호황기에도 경제성장률은 2%대에 불과했고 우리가 대단하게 생각하는 ‘라인강의 기적’시기에도 성장률은 5%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에 비해 ‘한강의 기적’시기 한국의 성장률은 두 자릿수 대가 예사였다.

전임 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평균성장률은 5%대다. 독일의 최고 호황기 때 성장률이랑 맞먹는다. 이를 생각해볼 때 5%의 성장률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서민들이 힘들고 경제가 어렵다고 할 이유가 없단 말이다. 현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747정책(평균 7% 성장, 10년 내에 4만 불 진입, 세계 7위권 진입)이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단지 국민을 현혹시키는 숫자놀음에 불과할 따름이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났다.)

대운하를 만들어 국토를 마구 파헤쳐서 환경이 오염되어도 GDP는 발생하고, 병든 사람이 많아서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도 의사들은 돈을 버니 GDP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은 올라간다.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해 국민이 죽어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니 경제성장률은 올라가게 된다.

물론 위에 나열한 것들은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사실이다. 국민총생산 GDP와 경제성장률은 단지 경제적 타산 효과만 따지고 삶의 질은 따지지 않는 숫자놀음이란 것이다.

더 이상 우리가 그런 숫자놀음에 놀아날 필요가 있나? 경제성장률이라면 이름의 환상에서 이젠 깨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지배층은 실상과 상관없는, 의미 없는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속이는, 그런 경제정책이라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책과 나의 이야기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그렇다. 당연하게도 명사들 중에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마이크로소프스사의 빌 게이츠 회장이나, V3라는 백신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안철수 박사 같은 컴퓨터 관련 직종의 명사들도 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단순히 평범한 진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것을 일찍이 깨달았고, 지금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 나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 더욱이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에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게임에 흥미가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 컴퓨터에 인터넷이 깔려 있어서 인터넷을 한다고 제법 시간을 많이 들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인터넷을 깔기 전까지 내가 컴퓨터를 켜서 하는 일이란 고작 한글 95나 97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니 그다지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바로 앉아서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빈둥빈둥 뒹굴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 동네에 창원도서관에서 운행하는 책으로 가득 찬 버스인 ‘이동도서관’이 1주일에 한 번씩 왔다. 한 번에 6권(아빠, 엄마가 모두 회원이셨지요.)을 빌릴 수 있어서 그것을 모두 빌리고. 보통 하루에 2~3권씩 읽고 어떤 때는 하루에 6권을 모두 읽어버리고 그다음에는 집에 있는 책을 읽었으니 그때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알 만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인터넷을 설치한 이후 인터넷의 재미에 빠져들면서 책 읽는 시간이 그전보다는 줄어들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했고 즐겨 읽었다.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책에 대해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매달 받는 용돈은 없었지만 명절 때 큰집에 가서 받은 돈이나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받았던 돈을 어느 정도 모았다가 책 사는데 전부 다 써버리곤 했다. 지금도 거의 그렇다.

지금이야 책 읽는 분야가 다양했지만 중학교 때 내가 읽는 책은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때문에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역사에 관련된 책을 즐겨 읽곤 했다. 중학교 때 인터넷에 ‘역사 동호회’를 만들게 되었고(후에 폐쇄했지만.) 지금도 가지고 있는 책의 대부분이 역사 책일 정도로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가 있다.

그것은 내가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사 온 지 3년쯤 되었지만, 이사 오기 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주신 역사 책(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을 읽으면서였다. 내가 역사에 대한 책을 사느라 돈만 생기면 그 서점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책을 샀던 터라 서점 주인아저씨도 나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책은 나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책의 내용은 역사왜곡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쓴 책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것이 많았고, 나는 그 책을 읽은 이후 결심했다.

‘반드시 역사학자가 되어서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겠노라고’ 결심했고, 지금도 나의 꿈은 역사학자이다.

그 이후 역사 말고도 다양한 분야로 책 읽기의 폭을 늘려나가면서 점차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꿈은 더 늘어났고, 더 커졌고 이루고 싶다는 소망은 커졌다.

책은 지금도 나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주고 있다.

인터넷 설치 이후 독서 시간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나의 스승. 나의 친구, 책.

2006/11/26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산다

병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나, 사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의 삶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아래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시한부에 대한 뜻이다.

시한―부(時限附)[명사]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붙임.

¶시한부 조건./시한부 인생.

네이버 지식인에서 보니 시한부 인생이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인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굳이 중병환자나 사형수만이 시한부 인생이 아니라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간다고 해도 언제 죽을지-앞을 내다보는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이상-알 수 없는 일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 법이니, 시간이 한정이 되어있는 인생이 시한부 인생이라면, 사고로 빨리죽든 천수를 누리며 칠십년을 살든 팔십년을 살든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인생이 시한부와 다른 것은 –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 – 단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죽을 때가 가까워오면 어느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지만- 것일 뿐이다. 언제 죽는지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삶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때가 되면 이승을 떠나니, 이 역시 또 하나의 시한부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그제서야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살아가려(?) 애쓰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인데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의 병에 걸리고 나서야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사실 때늦은 일이 아닌가.

사람이 영원히 살지 않고 사람의 삶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운 법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처럼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 있어 후회할 일이 어찌 있겠으며 삶이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이런 글이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생각은 하되 실천이 안될 따름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를 따르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나도 실천에 옮기지를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얕은 인생경험으로 남에게 삶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며 ‘감나라 대추놔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스스로를 보고 그렇게 살아라,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계속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