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은 자기 맘대로 일정을 짜서 움직이는 것이고 언제든 일정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여행사 패키지 여행은 가본 적은 없지만 단체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니 중·고교시절에 갔던 수학여행 같은 게 아닐까.
조금은 무리한 비유일지 몰라도 직업을 여행에 비유하자면, 평범한 월급장이가 패키지 여행에 가깝다면 프리랜서나 창업을 하는 것은 배낭여행에 가깝지 않을까.
패키지 여행이 효율적이고 안전한 반면에 다소 자유롭지 못하다면, 배낭여행은 다소 비효율적이고 조금은 위험할 수 있지만, (외국여행 갔다가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도중에 일정을 바꿀 수도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다.
여행은 패키지와 배낭여행을 선택할 수 있는데, 직업은 그렇지 못한듯하다. 어떤 사람이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주변에선 자꾸 패키지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 물론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부자 부모를 만났거나 아주 용기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여행의 방식이 다르듯 하고 싶은 일의 성격도 다르다. 만일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해서 수입이 넉넉하지 않거나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살아갈 수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사람들이,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좀더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일에 도전하지 않을까. 창업을 할 수도 있고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고 사회운동을 할 수도 있을 테다. 아니면 회사원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대기업에 목을 매기보다는 작은 회사에 도전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안정적이거나 높은 월급이 좋아서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테다. 그리고.. 그들도 존재해야 세상이 돌아갈 테니까. 어떤 일을 선택하든 그건 각자 자기 마음이다.
다만 패키지 여행과 배낭여행 중 뭘하고 싶은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했더라도 나중에 번복할 수 있는 자유까지도, 일부 예외적인 사람들이 아닌 모든 이에게.
만일 그런 세상이 된다면, 내 선택은 패키지 여행보다는 배낭여행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꼭 용이 아니라 지렁이로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나는 지렁이가 용을 별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지렁이가 용을 보며 너만큼은 살지 못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너 부럽지 않다고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라 출세하지 않아도 억울하지 않은 세상. 더 나아가 그까짓 거 출세해봤자 뭔 쓸모가 있냐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2012/05/27
‘대세’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한 사회나 집단의 지배적 흐름을
설명하는 낱말에 불과하다.
단지 그뿐이다.
‘지배적 흐름’ 이라고 하여
당위성이 저절로 붙진 않는다.
따라서 단지 대세라는 이유만으로
순응의 대상이 될 순 없다.
2015/05/22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한 권 꼽으라면 난 계간지인 «녹색평론»을 들겠다. 단행본을 들자면 «오래된 미래». 모두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다. 내 인생을 어떤 하나의 분기점을 기준으로 둘로 나눈다면, 나는 «녹색평론»을 접하기 전과 접한 후로 나누겠다.
나는 고등학생 때 녹색평론을 읽기 전까지 세상을 ‘보수 ― 개혁 ― 진보’라는 틀 속에서 이해했다.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건 내가 중학생 때 이미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있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조숙했던 탓이었다.) 근데 «녹색평론»과 «오래된 미래»를 만나면서 그걸 넘어서 현대 문명 자체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더 나은 문명을 우리가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고 만일 가능하지 않더라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녹색평론»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문명’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전혀 거창한 게 아니다. «녹색평론»은 보수 ― 진보를 넘어서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간지다.
2015/05/21
사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 때 비로소 위대해질 수 있다는 글귀를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아주 고귀해질 수도 있고 한없이 추악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남들은 물론이고 내 한몸 건사하기 급급할 정도로 모자란 놈이라서 아마도 그렇게 위대한 인간이 되지는 못할 테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만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나의 영역(?)에서 힘닿는 만큼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니까. 그들이 불행하면 내가 불행하니까. 순전히 나 좋자고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