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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독립운동가와 테러단체

2016/11/05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동맹)’은 간단히 말해 광복 직후에 생긴 ‘우익 테러단체’다. 아래 기사에 나오는 김구·조소앙·엄항섭·조경한은 모두 독립운동가 출신이고, 정인보는 우리에게 민족사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훌륭한 역사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우익 테러단체의 결성식에 참석했다는 기록은 내겐 놀랍다.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광복 후 테러단체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은, 시대 상황에 따른 숙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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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4월 9일 (대한민청 결성식)

“대한민주청년동맹 결성식은 9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김구를 비롯하여 신익희, 조소앙, 엄항섭, 조경한, 정인보 등 제씨의 임석 하에 박용직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는데 김후옥의 취지 설명이 있은 다음 내빈 축사가 있고 뒤이어 규약 통과와 임원선거가 있고 미소공동위원회와 민주의원, 민주주의 민족전선에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하고 동 4시 폐회하였다.”

– 『조선일보』, 1946.04.10.

김상구, 『김구청문회』, 매직하우스, 184쪽.

행복에 이르는 길

2016.10.24

팟캐스트 〈앤쌤의 심리분석상담소〉에서 소개한

어떤 심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기에게 상을 주는 일을 하는 것보다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상대에게 좋은 일을 하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더 크고 오래간다고 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이 다른 데 있지 않다.

인류의 종말

둘째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전에 집에 갔다가 오늘 돌아왔다. 원래 목적대로 누나와 조카를 보진 못했지만, 추석 이후로 오랜만에 부모님도 뵙고 첫째 조카도 보고 왔다. 조카의 나이 이제 세 살(27개월)이고 사진으로만 본 둘째 조카의 나이는 이제 10개월이다. 조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도 세상은 지금과 비슷할까. 과연 그때도 인류가 무사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외) 조부모 세대가 어리거나 젊은 시절엔 나라가 없었거나 있어도 아직 제대로 틀이 갖춰지기 전의 상태였다. 부모 세대는 농경시대 막바지와 산업화 시대에 성장기와 청년 시기를 보냈다. 우리 세대는 산업화 시대 막바지에 태어나 (절차적) 민주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에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앞선 세대에 비해서 기간은 짧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잠시 경험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은 앞세대보다 풍요로웠지만, 사회로 나가자마자 비정규직 문제와 저성장으로 인한 실업 문제로 신자유주의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물론 이 바람은 청년 세대만 겪고 있는 건 아니긴 하다.)

이처럼 (외)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가 이처럼 다른 유년·청년기를 보냈는데,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의 삶이 비슷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문제, 핵발전소와 인구 문제 등 아직은 일부에서만 나타나거나 잠재되어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에게 모두 피부에 느껴지는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 같다.

“로마 클럽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성장 사회의 기초를 의문시하지 않는 모든 시나리오는 문명의 붕괴에 이른다. 로마 클럽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3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환경오염에 의해 발생하는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4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식량 위기를 이유로 문명 붕괴의 시기를 2070년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밖의 시나리오는 위 세 가지 위기의 변형이다.”
– 세르주 라투슈, 『탈성장사회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오래된 생각 中에서…

탈성장사회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탈성장사회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 저자 세르주 라투슈 (지은이), 양상모 (옮긴이)
  • 출판 오래된생각
  • 발매 2014-05-25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지은이가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성장사회비판의 다양한 사상조류들을 탈성장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모델과 사상을 제시하는 책이다.

‘설마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겠어’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난 그 ‘설마’가 현실로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원의 남획으로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터 섬의 주민들도 아마 설마 했을 거다. 거대한 전환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경제적으로는 덜 풍요롭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이스터 섬의 비극은 재현될 거다.

그땐 한 섬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전환에 실패한다면 어쩌면 (전환에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고) 온 인류가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난 ‘신’은 존재한다고 믿지만, 인류가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종족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동·식물 중에 (자연 변화 때문이든 인간의 잘못 때문이든) 많은 것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져갔다. 어쩌면 인류도 언젠가는 다른 종처럼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신의 분노 같은 게 아니라, 선도 없고 악도 없는 무심한 우주의 변화이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인류의 멸종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이스터 섬의 사례처럼 인류가 자멸을 선택한 결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16.10.12

만일 ‘환생’이 정말 있다면

2016.10.07

만약에 환생이란 게 정말로 있어서 내가 다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온다면, 그때도 세상이 지금이랑 비슷하다면… 그땐 학교를 이렇게 오래 다니진 않을 테다. 난 대학에서 만난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만일 환생한다면 대학은 안 갈 테다.

학교는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할 생각이다. 이왕이면 손재주가 있어서 예술이나 기술을 업으로 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만일 기술자가 된다면, 수제화나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땐 내 분수에 넘치는 꿈같은 건 품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예술 활동, 내가 만드는 수제화나 도자기 같은 것들에 빠져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면 배우자와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여유가 좀 있다면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가 웃으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

필수품

2016/08/20

에어컨이 ‘부의 상징’이던 시절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에어컨을 틀고 싶은 대로 틀 수 있는 집은 드물겠지만, 예전에는 가정집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었고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학교에선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람과 부채로 여름을 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에어컨이 설치된 학교에서 생활했던 것 같다. 에어컨을 들여놓기 전에 집에선 선풍기 두 대와 부채로 여름을 보냈는데, 집에는 언제 늘어났는지 모를 수많은 부채가 쌓여 있었다. (비싼 부채는 아니고 아마도 길에서 받은 부채일 거다.) 

집에 에어컨이 생긴 건 아마도 9~10년 된 것 같다, 물론 에어컨이 있어도 거의 틀지 않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우리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지금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에어컨을 포함해서 우리 삶에서 필수품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현대 사회의 필수품으로 지목된 대표 주자로 에어컨을 언급했을 뿐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문명이 발달해서 우리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이 늘어날수록, 삶의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본질이란 ‘단순하고 소박함’이니까. 

그런데 우린 정말 편리해지고 있는 걸까. 만일 그게 맞는다면, 편리함을 추구하는 게 문명 발전의 목적이 되고 있는 건 과연 옳은 방향일까. ‘무슨 헛소리냐. 그럼 너는 문명 발전을 거부하겠다는 거냐.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고 살면서 별 이상한 소리 다 듣네.’ 하는 비난이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렇긴 하다. 글만 이렇게 쓰지 나도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그냥 삶이나 문명의 관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는 잠시 멈추어 서서 의문을 품는 것도 때론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