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행복할 만큼 충분히 돈을 갖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어서 자신의 손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지금 하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기업체 사장이나 장관 자리와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고 싶다’보다 ‘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나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하고 싶다’는 말을 딱 한 번만 해야겠다.
평생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빈둥대는 게 내 원래 꿈이지만, 어차피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면, 이왕이면 그냥 노동자 말고 은퇴하는 날까지 행복한 노동자로 살고 싶다.
“나는 행복할 만큼 충분히 돈을 이미 가지고 있어. 단지 저기 서서 그림 한 장만 팔면 돼.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저 다리에선 내가 제일 유명해. 모든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황홀한 미소를 짓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자유로워.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 오늘 너를 만나서 행복하기에 그림은 내일 팔면 되는 거야. 그저 내 꿈은 지금처럼만, 지금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로 평생 사는 거야.”
작은 거인 안시내의 솔직, 감동 여행기. 153센티미터의 아담한 키. 아직 앳된 스물두 살의 여대생. 게다가 가지고 있는 돈은 350만원뿐. 이 돈으로 비행기값, 숙박, 식사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 모두 무모하다고 하는 도전을 안시내, 그녀는 시작했다.
“맞습니다! 바로 기술 덕분이지요. 제 기술로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사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거짓말하고 남 속이며 제 잇속 차리는 사람들, 참 많이 봤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 두 손을 자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정직한 손! 저는 감히 제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순전히 제 기술로만 돈을 버니까요. (유홍식 수제화 명장)”
의류봉제, 수제화, 가방, 액세서리, 주얼리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장인들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묶어 냈다. 이 아홉 명의 장인들은 그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창신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11년과 국회로 들어온 3년 동안, 직접 만나서 그 진가를 발견한 이들이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장관이나 그럴듯한 기업체 사장 자리를 줄 테니 그쪽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대답이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였다면 그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고,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서 ‘저는 지금 하는 일을 정말로 사랑하고 또한 긍지를 갖고 있으며 저의 계획에 따라서 일을 마무리하여야 하므로 갈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이라야 정말로 잘 사는 사람이이고 멋쟁이가 되는 겁니다. (무위당 장일순)
‘나는 왜 쓰게 되었나’라고 제목을 정하고 보니 뭔가 거창하다. 만일 이 글의 제목에서 문득 조지 오웰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가 떠오른다면, 맞다. 그게 바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왜 글을 쓰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내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글을 왜 쓰니?’ ‘어쩌다가 쓰게 되었니?’하고.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언제부터 글 ―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발적인 ― 이란 걸 쓰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그 시작은 내가 초등학생 때인 것 같다(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는 내 기억에 없다). 그 시절에 한동안 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우리 집 컴퓨터 한글 문서에 베껴 쓴 적이 있다. 당시에 그 모습을 본 엄마와 누나는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꽤 범상치 않았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새 창작 욕구를 느꼈나 보다. (역시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혼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90년대 후반)만 해도 인터넷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니 우선 연필로 공책에 써서 컴퓨터 한글 문서에 옮겼다가 다시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했다. 아쉽게도 난 글짓기 신동이 아니었으니, 마음과 달리 멋지게 쓸 순 없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나중에는 그걸 방학 숙제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 흑역사가 초등학교 5학년(6학년인가?) 때 만든 우리 반 문집에 남아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드디어 우리 집에도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중학생이 되어 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 ‘엔티카’라는 옛날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억하나. 싸이월드나 네이버·다음과 비슷한 곳이었는데, 거기에 ‘소설나라’라는 클럽이 있었다. 회원 가입은 자유로웠고, 회원이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나 또한 거기에 잠시 동참했는데, 지금도 내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남아있다.
고등학생이 되어 블로그란 걸 하게 됐다. 바로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이 블로그다. 당시에는 칼럼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칼럼의 주인은 칼럼니스트라고 불렀다. 그래봐야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네이버 블로그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서비스였다. 하지만 나는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이 탐나서 다음에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에 처음으로 마련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주로 블로그에서 글을 썼고,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에도 산문이나 시를 올렸다.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SNS 시대가 개막한 후에는 (글의 길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SNS도 나의 글짓기 공간이 되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글의 원래 주제는 ‘나는 왜 쓰게 되었나’다. 글 쓰는 게 직업도 아니면서, 나는 왜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활자의 형태로 내보이는 걸까. 글 쓰는 게 좋아서다.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강제 없이 자발적인 글쓰기를 10년 넘게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나. 나는 심지어 의무적인 글쓰기조차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교내 행사 때문에 해야 했던 글짓기도 좋아했을 정도. 오죽하면 글짓기, 그림 그리기, 행글라이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교내대회에서도 늘 글짓기만을 선택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면 나는 왜 그토록 글 쓰는 걸 좋아했을까. 난 어릴 때 친구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랬다. 한 명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는 혼자 놀 때가 많았다. 따돌림을 당했던 건 아니지만,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 탓에 좀처럼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여럿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부러워했지만, 마음뿐이었다. 운동도, 게임도 같이 할 수 없었다. 내 딴엔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운동 신경은 지지리도 없었고 게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섞여서 노는 방법도 있을 법한데, 그땐 그 정도의 뻔뻔함이 없었다. 더구나 핸드폰도,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내게 친구란 오직 책뿐이었다. 물론 방과 후에는 늘 가족이 있었지만, 가족이 친구랑 같을 순 없는 일이었다. TV로 만화를 볼 수 있었지만, 방영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만화책에 빠져들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았다. 물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텍스트로만 된 책보다 만화가 있는 책을 먼저 읽었겠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화책보다는 텍스트가 많은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정말로 그걸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직접 써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나보다. 그리고 쓰다 보니 그 매력을 느끼게 된 게 아니었을까.
처음엔 외로워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게 글쓰기란 이른바 ‘자기 구원 행위’였다. 내가 인터넷이란 걸 모르던 시절에 친구가 없던 나는 책을 나의 벗과 스승으로 삼았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글로 내 상상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읽기’와 ‘쓰기’란 걸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도, 게임도 못하는 내가 자존감을 유지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거다.
어릴 때부터 각종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는 글짓기 신동들만큼은 아니지만, 글짓기는 어릴 때의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글짓기로 받은 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최우수상(한글날 기념 교내 백일장)이다. 그때의 기억과, 선생님들께 잘 쓴다는 칭찬을 어릴 때부터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인터넷을 만났을 땐 정말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쓴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쓸 테다.
아직도 정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시민이 정치를 하는 시대입니다. 적어도 선거권을 가진 만 19세 이상의 모든 시민은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도 정치의 일부니까요.
대학교 학생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회장도 정치를 합니다. 학생회장 개인이 정치 성향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출된 학생회의 역할은 물론이고, 학생회 선거 과정 자체도 곧 정치의 한 형태니까요. 초등학교 때 반장 선거나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정치를 학습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정치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 이해관계·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라면 그게 곧 정치지요. 서명운동이나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동참하는 것도, SNS로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정치 참여입니다. 직업 정치는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도 정치의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적어도 유권자가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제가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누가 제게 ‘너 정치하려고 그러냐’하고 묻는다면, 저는 ‘난 지금도 정치하는데?’라고 답할 겁니다.
2016/11/19
블로그 이사 작업 진행중입니다
안녕하세요. 하늘바다입니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barosa22)에서 지금 이곳 워드프레스 블로그로 이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 개의 글을 올리는 대작업이라 이사오는 데 1~2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정식 오픈 뒤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안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