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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남자였으면, 여자였으면

‘남자였으면 장군감이다’라는 말은, 사실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여자라고 장군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니까.’여자였으면’으로 시작하는 말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남자나 여자가 잘하는 일과, 성별이 바뀌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분명 존재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군인으로 더 적합하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간호사로 더 적합할 가능성이 높은 건 아마도 사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자가 모두 할 수 있다거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자가 모두 할 수 있다는 말은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남성이 잘하는 일인데도 그 일을 잘하는 여성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대체적인 특성일 뿐이지, 개별적인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떤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례는 우리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더라도, 실은 우리의 고정관념이 빚어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2017/10/09

나무와 그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나무를 ‘키 큰 사람’
또는 ‘서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큰 나무일수록 그늘은 넓고 깊다.
나무가 사람이라면, 사람도 나무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아주 작고 어린나무겠지.

지금보다 큰 나무가 되고 싶다.
아름드리나무까지는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
한 사람 정도 가끔 쉬어갈 만한 그늘을 줄 수 있는,
그만큼 큰 나무.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2017/07/25

군주민수(君舟民水)

2017.04.23

요즘 같은 시대에 연예인도 아니고 대선후보 유세를 보러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들다니… 그런데 만일 내가 그였다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울 것 같다. 지금이야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칫하면 저 사람들이 모두 내게서 등을 돌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박수를 받으며 퇴임한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는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백성과 임금의 관계도 그와 같다. 유교 사상가인 ‘순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나라의 주권이 백성이 아니라 군주에게 있었던 시대에 그런 말이 나왔다. 그때도 민심은 천심이었다.

우리 현대사도 그랬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랬고 가장 최근의 박근혜도 그랬다. 어떤 절대 권력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정권은 예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결국 ‘군주민수’를 거스르지는 못할 테다.

언젠가는 북한 주민 스스로, 어떤 권력도 물 위에 떠 있는 배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언론이 발표하는 여론조사를 신뢰한다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는 안철수와 문재인이다. 두 후보 중에 누가 되든 ‘군주민수’라는 사자성어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태극기다

2017.03.02

태극기는 죄가 없다. 태극기는 단지 국가의 상징일 뿐,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국가’란 무엇인가.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말했듯, 대한민국 헌법 1조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어서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일갈한다.

태극기가 국가의 상징인데, 국가가 국민이라면 태극기는 곧 시민(국민)을 뜻한다. 박정희나 이승만, 박근혜가 태극기가 아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어떤 국가권력도, 정치집단도 태극기를 사유화하고 독점할 수 없다. 그들은 태극기가 아니다. 시민이 태극기다. 우리가 태극기다.

고기를 먹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먹으면서 돼지를, 한때 살아있었을 돼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하진 못해도, 난 종종 식사에 앞서 식탁에 오기 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한때는 우리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였을 그들을 생각한다. 내 그릇 속의 밥도 본래는 벼였겠지.’ ‘접시 속의 나물도 여기 오기 전엔 생생하게 살아있었겠지’ ‘오늘 먹은 돼지도 한때는 꿀꿀하고 울었겠지.’

자연 속의 동물들은 자기의 먹이가 된 동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고 토끼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쥐에 대해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동물이 아닌가 보다. 옛날 몽골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양을 잡는 모습이나,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소를 잡을 때 고사를 지냈던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동물로 태어난 이상,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남의 살을 먹고 살아야 함은 우리의 숙명이다. 그것을 동학에서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두고, 밥을 먹을 때도 밥을 하늘처럼 공경하며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채소도 하늘처럼, 돼지고기도 하늘처럼.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냥한 짐승을 먹기 전에 반드시 먼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끼니마다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밥을 먹는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