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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천민자본주의’라는 말

천민자본주의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이르는 말이다. 관습적으로 쓰는 말이지만 천민은 억울하다. 천민은 신분이 천한 사람이었지 인성이 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노동력을 팔아서 누구보다 정직하게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천민은 경제·정치 권력을 가진 걸로 모자라 도덕적 권위까지 독점했던 양반들 중에 더 많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천민’은 단지 비유라는 걸 나도 안다. 그래도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표현할 때 천민이라 함은 그 사람들에게 너무한 일이 아닐까.  

하긴 꼭 그 천민을 떠올릴 필요는 없겠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짐은 언어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니까. 과거에는 신분이 가장 낮은 이들을 칭하는 말이었다면 지금은 인성이 천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될 테니까.

이를테면, 사람보다 돈이나 지위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양진호 같은 사람들이다.

엄마의 거짓말

옛날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엄마가 아이를 놀려주고 싶어서, 아이에게 아이의 사탕을 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놀라웠다. 아이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탕을 먹고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다 먹어도 괜찮아요.”

우분투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매달아 놓고 제일 먼저 도착한 한 사람만 모두 차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손을 잡고 달려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인류학자가 물었다. 1등을 하면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아이들이 대답했다. 

“우분투” 

이어서 아이들은 말했다. 

“모두 슬픈데 어떻게 혼자 행복할 수 있나요?” 

‘우분투’는 반투족 말로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는 뜻이다. 

선(善)의 평범성

시민들이 힘 모아..불길에 갇힌 운전자 구했다

뉴스데스크] ◀ 앵커 ▶ 불이 난 승용차에서 운전자가 탈출하지 못하고 갇히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주변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운전자를 무사히 구해냈습니다. 남궁욱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어제(23일) 저녁 광주의 한 교차로. 학원버스와 충돌한 승용차에 불이 났습니다. 운전자는 사고 충격으로 다리를 못 움직여 탈출하지 못하는 급박한 상황. “사람 빼야

나쁜 놈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일도 언론의 중요한 책무지만, 언론에서 이렇게 밝고 희망적인 소식도 많이 전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좋은 세상이 될 테니까.

한나 아렌트가 ‘악(惡)의 평범성’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선(善)의 평범성’도 있다고 믿는다. 악도 평범하지만 선도 그만큼은 평범하다. 전적으로 선하거나 혹은 악하기만 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아마 우린 대부분 평범하게 선하거나 평범하게 악할 테다.

아마 뉴스에 나온 사람들도 늘 선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사람들도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한 보통 사람들이었겠지.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겠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범한 악보다는 평범한 선을 더 고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 없는 세상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노동 소멸’.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누구를 위한 노동 소멸인가. 물론 당장에 모든 일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겠지만, 일부는 새로 생겨나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향후 노동시장에서 인간의 전체 비중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인류 역사에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 인류가 노동을 하지 않고 살아간 적이 있었나? 내가 너무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걱정된다. ‘노동 없는 사회’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 아닌가? 물론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해서 꼭 비관할 일은 아니지만, 섣부른 낙관은 위험하다. 까놓고 말해서 자본가들이 우리 좋으라고 인공지능에 투자하진 않을 테니까. 

노동이 소멸한 세상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일부 노동자들만 남고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어도 민주주의는 괜찮을까. 국가에서 받는 기본소득으로 생존은 가능하지만, 대신에 모든 정치·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하진 않을까. 

나는 노동 없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모든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대접받고 적절한 여가를 누릴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 이런 꿈은 그저 공상에 불과할까. 

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파도에 맞서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파국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우리 세대는, 그리고 나는 우리가 맡은 시대적 과제에 적절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2018/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