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형태와 양상만 달라질 뿐, 본질적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언뜻 맞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인류 역사를 지극히 한정해서 본 시각일 뿐이다. 더 길게 보면, 우린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계급이 발생했다고 하니, 지배·피지배 관계의 역사가 수천 년에 이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석기·신석기 시대가 인류 역사의 9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어찌 우리 시대가 예외적인 시기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 대부분 지배·피지배 계급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2018/01/07
북미 원주민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서정록 선생은 말합니다. 북미와 시베리아 지역 원주민들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모두 모습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요. 벌레는 벌레사람, 돼지는 돼지사람, 나무는 나무사람 혹은 서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고요. 샤머니즘이 퍼져 있던 단군 시대에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홍익인간’에서 말하는 인간 역시 단지 생김새만 다른 이 땅의 온 생명이라고 서정록 선생은 말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처럼, 정말로 인간과 로봇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런 날이 오면, 우리는 로봇 또한 겉모습만 다를 뿐,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수도 있겠지요.
단군 이래 수천 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도 ‘홍익인간’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어요. 새해에는 홍익인간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타쿠예 오야신(우리는 하나)’이라는 어느 북미 원주민 종족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니까요.
2017/12/27
나쁜 놈들을 욕할 때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걸레가 뭐 어때서.
제 몸을 더럽혀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를 왜 모욕하나.
‘걸레’는 훌륭한 사람한테
써야 하는 표현이 아닐까.
걸레처럼 살 수 있는 사람,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아까 왔다 간 손님이 한 손에 팸플릿 형태로 된 ‘전국택배연대노조’ 가입 신청서를 들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분들을 응원한다.
노동을 존중하는 나라는 투표만 잘한다고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서구 선진국의 복지를 견인한 건 노동자들의 조직, 즉 노동조합의 힘이 컸다. 노조는 더 많아져야 하고 그 힘은 더 커져야 한다. 노조에서 활동하거나, 노조를 응원하는 일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불온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에 노동자였거나 지금 노동자이거나 앞으로 노동자가 될 텐데, 노조에 우호적인 행동이 용기를 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로 민주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가 노조가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이 기업과 함께 이 사회를 이끄는 힘의 한 축으로 안착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저녁이 있는 삶’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쌀이 화폐였던 시절에는 재산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래 놔두면 썩으니까. 옛날 천석꾼·만석꾼 부자들이 춘궁기에 빈민들을 구휼했던 건 그들의 선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남아도는 쌀이 썩기 전에 처리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 같다. 쌀도 처리하고 인심도 얻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물론 쌀이 썩든 말든 절대로 나누어주지 않는 욕심 많은 부자도 많았겠지만.
그런데 오늘날의 화폐는 썩지도 않고 무게도 가벼우니, 옛날 부자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쌓아두어도 아무 걱정이 없다. 게다가 언젠가는 ‘가상화폐’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단다. 그러면 미래의 돈은 전산상에 뜨는 숫자에 불과하니 더 말해 뭐할까. 부의 한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계 없는 부의 시대에 부자들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물론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당하게 벌어서 부자가 된 사람은 존중해야 한다. 나도 그걸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금융 자본주의 시대 이후 돈놀이로 부호(富豪)가 된 이들까지 존중해야만 한다는 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정당하게 번 돈뿐만 아니라 무슨 짓을 하든 돈만 많으면 장땡인 게 지금 세상이지만.
앞에서, 정당하게 번 돈은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인 부호들의 재산이 전 세계 수십억이 가진 돈과 비슷하다면 과연 공정한 일일까.
옛날 북미 원주민들에게는 ‘포틀래치’라는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어떠한 연유로든 자신과 가족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재산이 생기면, ‘포틀래치’라는 성대한 축제를 벌여 이를 모두 써버리고 남는 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문화였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지나친 부를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지나친 부’는 ‘빈곤’만큼이나 사회의 안녕을 위협한다.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마치 부자를 혐오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부의 독점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은 분명 자본주의에도 좋은 일은 아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