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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세상 읽기

인디정신

인디 정신이 뭔지는 몰라도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자유’와 ‘저항’이라는 두 낱말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와 ‘저항’이라고 꼭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언론·예술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만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꼭 사회운동가나 예술인·언론인·출판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유’와 ‘저항’은 사람들의 일상 도처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설령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자유로워야 한다. 저항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속엔 저항심을 가져야 한다. 비록 현실은 원치 않은 직장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할지라도, 비록 백수일지라도,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는 을일지라도, 끝끝내 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못났다고 욕하고 상처를 줄 일이 아니라, ‘난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언제든지 갑질에 맞설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참을 뿐이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비록 실천하지 못하는 ‘자유’와 ‘저항’이라도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어야 한다. 비루해보여도 그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마음 속의 인디 정신이라고 난 믿는다. 그리고 또 아나.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면 마음 속이 아니라 정말로 ‘인디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

2016/01/05

넌 이렇게 살지마라

며칠 전에 가까운 대학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지금은 대학 전공을 살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선배지만, 제대하고 한때 어떤 냉동창고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 군대와 서점 일밖에 없어서, 냉동창고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했던 일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힘든 일이라 어림 짐작하며 들었다.

선배가 한 일은 그중에서도 지게차 알바였다고 하는데, 선배가 말을 시작했을 때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냉동창고 일은 무지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선배(형이라고 부르지만)의 얘기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선배가 했던 일의 강도가 아니라, 선배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선배와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어른(선배가 그분을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이 선배에게 한 충고(?)였다.

“넌 이렇게 살지 마라”

그 어른은 선배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 어른은 냉동창고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오신 분이었는데, 결코 쉽지 않은 냉동창고 일을 계속 해오시면서도 월급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 분이 선배에게 그런 말을 충고로 전했던 것이다. 아마 그 말 뒤에는 생략된 말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지만, 넌 아직 젊으니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일을 찾아서 우리보단 더 낫게 살아라’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선배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난 그 어른의 말을 직접 듣지 않았으면서도 그 어른의 말이 참 아프게 들렸다. 그 말을 직접 듣지 않은 나에게도 그렇게 아프게 들렸는데 그 말을 직접 들은 선배, 아니 그 말을 선배에게 해야 했던 아저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째서 우리 사회는 그런 분들이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왜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비슷한 이야기를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서도 읽은 적이 있었다. 힘든 공사판 일을 하면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송경동 시인에게, 같은 일을 하던 동료 형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너는 이렇게 살지 말고 꼭 시인이 되어라’라고.

꿈꾸는 자 잡혀간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 저자 송경동 (지은이)
  • 출판 실천문학사
  • 발매 2011-12-12

제29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시인 송경동의 첫 산문집. 앞선 두 권의 시집 <꿀잠>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의 시들이 송경동 시인의 삶과 노동 현실을 축약한 형태라면, 이번에 출간된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이제껏 그의 시에서 볼 수 없었던 송경동 시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분들은 내 선배에게, 송경동 시인에게 자신의 마음도 아프게 하는 그런 말을 했어야 했을까. 사실 그 말은 그분들이 했어야 하는 말이 아니다.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 온 전과자나 떳떳하지 않게 살아온 이가 잘못을 깨닫거나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자녀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 충고를 할 때나 해야 하는 말이 아닌가.

어째서, 떳떳하게 자신의 노동으로 땀 흘려 벌어먹고 사는 분들이 그런 말을 해야 하나. 그 일이 힘들어서? 아니다. 힘들어도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면, 육체노동자가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한 한 사람의 기술자로 대우받고 월급 또한 적지 않은 선진국의 노동자였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다. 그 말을 들으며, 그 이야기를 되새기며 여기에 적고 있는 이 순간 참 아프다. 하지만 아픈 것에서 끝나면 아무 소용 없으리라.

난 꿈꾼다, 그리고 간절히 소망한다.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 적어도… ‘넌 이렇게 살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드는 데에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내 직업은 ‘나’다

“저는 원래 만화가가 아니고 광고 크레이터가 꿈이었어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창작적인 면이 매력적이거든요. 그런 점은 만화도 이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저는 만화가 아닌 광고를 했어도 즐겁게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직업이 목표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만화가가 꿈이라는 순간 미래가 확 좁아지잖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이 실현될 칸이 넓은데 왜 가두려고 하나요”

-워니(박종원) 작가 인터뷰 [민중의 소리]

[원문출처 : http://www.vop.co.kr/A00000868543.html]

2015.11.02

네이버 웹툰 초창기에 <골방환상곡>이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박종원 작가의 ‘민중의소리’ 인터뷰를 읽다가 공감 가는 내용을 기사에서 캡쳐해왔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도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김어준의 직업은 김어준이다’라는 말로 이와 비슷한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박종원(워니)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다. 내가 특별히 다재다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정한 직업으로 묶이기엔 어쩐지 내 인생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공무원처럼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면 또 모를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특정한 직업으로 규정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어준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늘바다의 직업은 하늘바다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역사 연구자의 길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게 딱히 내 인생의 목표라고 보진 않는다.

물론 살다 보면 그게 나의 유일한 목표이자 종착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고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현실성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박종원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직업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까진 없다. 자기에게 너무 잘 맞는 직업으로 평생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다른 이의 삶에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살든 개인의 자유다.

4년 전에 쓴 글이에요. 블로그에 쓴 글은 대부분 예전에 운영하던 글을 옮겨온 것들이에요. 이곳에 하루에도 글을 몇 개씩 올릴 수 있는 비결이지요. 10년 넘게 운영하던 블로그다 보니, 여기서 블로그를 운영한지 꽤 되는데도 여전히 옛날에 쓴 글의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그때 쓴 글은, 시의성에 맞지 않거나 제 마음에 안 드는 글도 많아서 앞으로는 새 글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 같아요. 대신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는 빈도도 많이 줄어들겠지요.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단순히 양으로만 승부하기보단, 되도록 저만의 색깔을 잘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옛날에 쓴 글보다 새로운 글의 비중이 더 높아졌을 때 제 글의 수준도 높아져 있기를 바랍니다.

윗글을 썼을 때랑은 제 개인 사정이 좀 달라졌는데요. 지금은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걷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다른 직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뭔지는 모든 게 확실해질 때쯤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만, 지금도 제 직업관은 저 글을 썼을 당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심재복(본명)’의 직업은 ‘심재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직업으로 먹고살았으면 좋겠지만, 불행히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 인생의 목표는 직업 그 자체가 아니니까요.

저는 단지 바라고 바랄 뿐이에요. ‘심재복’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절대로 영악해지지 않기를,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손톱만큼의 순박한 마음을 죽을 때까지 지켜내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조금 더 바란다면, 늙어서도 꼰대가 아니라,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스승 같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월급 많이 받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자동화’에 관하여

2015/10/17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동화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다. 언젠가 《녹색평론》에서 읽은 어떤 구절이 생각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생각나는 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폐하, 노동절약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한 기술자가 이렇게 말하며 왕에게 그 기계를 바쳤다. 왕은 그 기술자의 공로를 치하하며 상을 주었지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맙다, 하지만 이 기계를 쓸 수는 없다. 나는 내 백성을 먹여살려야 한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여기며 자동화로 나아가는 게 답일까. 내가 자동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여태껏 현대산업문명의 혜택을 받아온 사람인데, 그렇게 말한다면 모순일 거다. 다만, 자동화가 꼭 필요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지 않을까. 아니 자동화를 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있다면 그 분야에서는 자동화를 규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규제를 한다는 게 바람직할까. 아니 당위성을 넘어 가능하긴 할까.

모든 게 자동화되고 그 자동화된 기계를 관리할 소수의 사람들만 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예술과 취미활동만 하며 살아가도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그 사람들은 행복할까. 예술과 취미활동은 온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남을 수 있을까.

풍요의 시대는 머지않아 끝난다

머지않아 석유문명이 정점을 지나고

기후변화와 생태재앙이 몰아쳐 올 때

식량수입도 석유수입도 불가능해지면

굶주린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 박노해 시인, <도시에 사는 사람> 中에서...

2015.09.29

고딩 때 《녹색평론》을 처음 접한 후로 종종 이 시와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다고 해도,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실제로 현실이 될 테다. 난 확신한다, 풍요의 시대는 머지않아 끝난다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는 미래 세대의 몫을 끌어다 쓰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약자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현 세대의 지금과 같은 풍요는 불가능하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만수르 같은 엄청난 부자들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그 반대편에 극빈층들이 있어야 한다.

아시아의 선진 공업국, 서구 선진국들의 번영은 가난한 제3세계 국가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기본적으로 약탈 경제라고 생각한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아무리 기부를 많이 해도, 서구 선진국들과 아시아의 선진 공업국들이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 3세계에 원조를 많이 해도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도 영원할 수는 없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풍요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머지않아 고갈된다. 아니, 고갈되기 전에 현 세대를 위협할 생태 위기가 온다. 아니다. 이미 위기는 예전에 시작됐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농경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물론 아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늦기 전에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나도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어쩌면 산업 시대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무도 약탈 당하지도, 약탈하지도 않고 모든 존재가 서로 조화롭게 사는 세상.